2022. 10. 19. 13:11ㆍ건강
세상에서 가장 하기 힘든 싸인: DNR 동의서
내 아이가 볼 만한
2018-12-14 10:24:22
세상에서 가장 하기 힘든 싸인: DNR 동의서
2017. 8. 1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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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 세월을 오래도록 함께 해온 유전자를 물려준 분과 약속한게 있었다.
당신이 아무리 아파도 다시는 병원에 데려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철썩같이 해달라.
그러나.. 그 약속을 들어드리지 못했다.
이 분은 14년 전 그 해 가장 추웠던 1월 어느 날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그 후 짧게는 보름 길게는 6개월까지 잊을만하면 한 번씩 병원생활이 이어져왔다.
병원에 실려가면 사람인지 기계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말 못할 고통을 겪으며 지내기 때문에
이 분에게 병원이라면 생각도 하기 싫고
경험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만 가득한 곳이었을 것이다.
재활 치료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뇌 손상으로 한 번 균형을 잃은 몸은 쉽게 회복이 되지 않고 완치도 없다.
완전 마비야 말할것도 없고 한쪽 몸만 마비인 상태라도 힘들 지경인데
해가 갈수록 노안, 난청, 치아에 대한 노화까지 빠르게 진행되니
생활의 불편함은 더욱 커지기만 한다.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무기력함과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우울감에 빠지기 시작하고
마음을 표현하고 싶으나 입밖으로 표현되는 말이 물리적으로 어눌하여
다른 사람이 알아듣기 어려우니 시원한 소통이 안되어 사람들과 답답함이 겹치기 시작한다.
소통의 답답함은 별 것 아닌 일에도 사람 사이에 쉽게 오해를 만들어낸다.
사람과 사람 마음을 닫게 하는 손쉬운 지름길엔 <오해>만한게 없다.
여기에 원인을 알 수 없고 진통제도 듣지 않는 끊임없이 계속되는 통증까지 더해지면
삶의 질은 그야말로 형편없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인간이 고귀한 영혼을 가지고 있다한들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상황에서는 몸에 갇힌 생명체이고
못 견디게 자존심 상할지라도 다른 사람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약해빠진 사회적 동물임을 뼈저리게 느낄 뿐이다.
하도 이 사람 저 사람 말에 팔랑팔랑하셔서 <팔랑귀 대마왕>이라고 별명 붙여준 이 분은
언제부터인지 무슨 일만 생기면 자기 생명을 담보로 한 협박을 시작하셨다.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냐..."
그리하여 팔랑귀 대마왕은 어느 사이 <갑>이 되었고 나는 졸지에 <을>이 되었다.
말씀으로 하는 물리적인 의사 소통이 거의 불가능해진 그 날
팔랑귀 대마왕은 나를 오게 하셨다.
그리고 "너 한 테 미 안 하 다" 는 일곱 글자를 써주셨다.
뭐가 미안하신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내게 미안하다고 하셨을 때는
그냥 하시는 말씀은 아니고 분명 미안한게 있으셨을 것이다.
같은 유전자가 섞여있을 텐데도 타고난 성질과 기질이 다른 건지
이해와 오해를 밥 먹듯이 반복하며
이뻤다가 미웠다가 지쳤다가 힘을 냈다가
곰살곰살 다정하다가 일만광년쯤 싸늘하게 멀어졌다가
오만가지 감정으로 뒤엉켜 있게 하면서
오랜 세월 나를 끊임없이 담금질하게 해주던 분.
내 인생 인간 관계에서 이 분만큼 어려운 사람은 없었다.
혈연이라 인연의 끈을 놓을 수도 버릴 수도 못 본척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애정 어린 화해만 해도 내 인생 공부는 완성된다고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호되게 충돌해왔기 때문에 진심으로 이 분과 나의 전생이 궁금하다.
뭐든 주워모으고 쌓아두려는 자와 가능하면 버리려는 자의 충돌.
뭐든 동네방네 소문내려는 자와 때론 삼키고 은근할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의 충돌.
혼자 살면서도 김치든 마늘이든 통 크게 준비해 놓으려는 자와
먹을만큼씩만 준비하려는 자의 충돌.
매장을 고집하는 자와 화장이나 수목장을 고집하는 자의 충돌.
이기와 이타의 충돌.
집착과 놓아버림의 충돌.
충돌과 충돌의 충돌.
타인은 이해되기 어려운 존재이다.
혈연이고 가족일지라도 타인은 타인.
사람은 다 제각각이고 나와 다르다는 것만 인정해버리면 쉽지만
가족일때는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배려와 존중이나 역지사지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
몸이 아픈 가족 환자때문에 속상하고 이해 안될때가 있어도
환자 옆에 있는 사람이 한 수 접어야 되도록 이미 그 게임은 프로그램 되어있는 것이다.
강 건너 난 불이니까 "어쩜 좋으냐 큰일이다, 물을 더 부어봐라, 모래를 뿌려봐라."
입으로 훈수두면서 구경하지
내 발등에 불 붙거나 신발과 발 사이에 작은 모래알이라도 끼면
껑충껑충 뛰면서 죽여주든 살려주든 하라고 난리나는 법이니
자기 수준과 상상력에 비추어 다른 사람 입장과 처지도 정확하게 모르면서
함부로 비난하거나 사람이 그것밖에 안되냐고 입바른 훈수를 둘 일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팔랑귀 대마왕이 아무리 쑤석거리고 찔러대도
내 마음에 어떤 파문도 일지 않을 때가 왔다.
팔랑귀 대마왕은 팔랑귀 대마왕이고 나는 나다.
누구에게도 도움안되는 <갑>과 <을>의 의미없고 일방적인 관계에서 벗어나자.
그때부터 조금씩 충돌이 멈추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 들으니까 펜을 들어 "너한테 미안하다" 써주시던 그 순간에 알았다.
십수년동안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막연히 생각만 하던
우리가 헤어질 날이 정말로 가까워졌다는 것을.
미안하다는 말은 단순히 미안한것 보다 훨씬 많은 뜻을 품고 있을때가 있다.
그 한 마디로 충분해서 대답 대신 손을 잡아주었다.
낡고 병들어 나날이 소멸해가는 팔랑귀 대마왕의 기운 없이 말랑말랑한 손을.
팔랑귀 대마왕은..
몸이 아픈 기간이 오래도록 지나면서 원래 지니고 계시던 좋은 성품을 많이 잃어가셨다.
하루 아침에 내 몸을 내 맘대로 못 쓰게 되고 낫기는 커녕 아픈 곳이 늘어나기만하니
청천벽력이고 불가항력인 어쩔수 없는 상황에 그럴수밖에 없을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에게는 그 모든게 마냥 이해만 되는 일은 아니다.
아프신 뒤로 많은 것을 내게 가르쳐 주신 분.
말도 안되는 고집과 본인은 기억도 안난다는 섬망 증세로 힘들게 할 때
나는 다른 사람에게 저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내 고집을 꺾을 수 있었다.
금방 들통날 허세 아닌 허세에 왜 저러시나.. 웃음이 나오면서
허세 부리지 않는 부리더라도 조금만 부리는 내가 되려고 했다.
덕분에 많은 것을 욕심내지 않는 삶이 무엇인지 아주 확실하게 배웠다.
CPR 받다 죽어나가는 환자와
생과 사의 기로에 선 수많은 환자들의 고통에 찬 아우성과
보호자들의 눈물과 한숨이 가득한 지옥 같은 응급실에서
제정신으로는 견딜 수 없는 며칠을 보냈다.
십수년동안 몇 번을 와봤어도 절대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고 익숙해지지도 않는 풍경들.
못난 생각인가 싶지만 인간인지라 마음 언저리에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이런저런 생각.
내가 왜 본 적도 없는 이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이토록 가까이서 지켜봐야 하나.
자식이 나만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자리엔 늘 내가 보호자가 되어야 하나.
나도 어쩌다 한 번 들여다보는 사이면 맘에 쏙 드는 이쁜 소리만 할 수 있을텐데.
산소포화도가 너무 떨어져 뭔가 조치하겠다고 응급실 의사가 말할때는
전처럼 산소마스크나 씌우려니 생각한 거였는데 나중에
입 안에 기관 삽관을 하고 인공호흡기를 달아놓은 모습을 보니 기가 막혔다.
기관 삽관 자체가 환자에게 너무 고통스러운 일인데다
말도 당연히 못 하지만 입을 벌리고 있어야 하니 온갖 균이 가득한 병원에서
균들에게 어서 몸 안으로 들어오라고 초대장을 보내는 거나 마찬가지.
경과가 좋아 스스로 숨을 쉴 수 있게 된다면 모를까
만에 하나 의식 없는 상태가 계속되면
이런저런 합병증을 일으켜 오래하고 있을 수 없으니
얼마 안 가 의사들은 기도 절개를 하자 할 테고
그 뒤로는 인공호흡기를 빼고 싶어도 빼지 못하고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게 아닌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림과 고통을 환자와 가족들이 감내해야 할 수도 있다.
분초를 다투는 상황일지라도 기관 삽관이라는 한마디만 해줬으면 되었을텐데
왜 내게 충분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는지 따져봤지만 이미 벌어진 일.
주치의를 만나 이후 기도절개나 CPR, 혈액 투석 같은 연명치료는
절대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충분히 밝히고 연명치료거부 동의서에 싸인을 했다.
내 인생에 이렇게 하기 어려운 싸인이 또 있을까.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어 이런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역할을 왜 내가 해야 하지.
내가 뭔데 누군가의 생사를 가르는 치료에 찬반 결정을 할 수 있지.
다시 깨어날 수 있으실까.
DNR 동의서에 싸인을 한게 정말 옳은 결정일까.
남은 평생 이 한 번의 싸인을 화두처럼 안고 살지도 모르겠다.
팔랑귀 대마왕이 간절하게 원했던 일이었을지라도.
응급실에서 의식 없는 환자의 보호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의자 하나 달랑 받고 1시간마다 소변량 체크해주고 24시간 상시 대기.
그런데도 며칠 있다 보면 응급실 침대 한 자리 차지하고 눕고 싶을 정도로 사람이 피폐해진다.
환자는 인공호흡기를 하고 있으니 혈압과 맥박이 모두 안정되어 화색이 돌고
금방이라도 깨어날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다 기계의 속임수라는 걸 안다.
들리든 말든 팔랑귀 대마왕 손을 잡고 <반야심경>을 들려드렸다.
부탁도 했다.
오랜동안 늘 제게 민원을 넣기만 하셨지 제 민원은 받아본 적 별로 없죠?
더도 말도 덜도 말고 딱 한 번만 넣을테니 꼭 들어주세요.
가서 만나요. 그 옛날 성질 급해 미리가서 기다리고 있는 그리운 사람들.
너무 일찍 돌아가셔 얼굴도 기억 안나신다던 할아버지 만나 응석도 부려보고
모시 한복 깔끔하게 차려입고 다니시던 할머니도 안아주세요.
엄마는 반가워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일단 눈치부터 봐야 해요.
엄마 옆자리 늘 탐내신거 아는데 엄마 마음은 아닐지도 모른다구요.
이 세상에 두고 못 떠날 집착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이사가는 거에요.
거처를 옮겨가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훌훌 털고 가볍게 날아가면 되는거에요.
응급실에 있던 며칠 만에 가까스로 중환자실에 자리가 나와 옮겨 드렸는데
중환자실은 하루에 두 번 30분씩만 면회가 가능하다.
내년 2월부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그 서류에 기꺼이 싸인해 놓을 것이다.
누군가 의식없는 환자가 된 나의 보호자가 되어 중요한 결정을 해야할 때
내 생명을 모른체 했다거나 버린다는 괜한 죄책감으로
잘못된 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도와주기 위해서이다.
기계에 호흡을 의지한 채 있는 줄 없는 줄 몸에 줄줄 매달고
폐렴이며 패혈증 신부전 등 온갖 합병증에 시달리다
신장 투석을 해야 하거나 심정지가 왔을 때
과격한 CPR로 갈비뼈 부러지고 장기 부서져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그런 난리 법석은 원하지 않는다.
내 의지로 아무런 의사 표현도 할 수 없고
좁디 좁은 병원 침대에 의식도 없이 누워
욕창이라도 걸리면 산 채로 살이 썩어들어가는 고통까지 겪으면서
생전 모르는 사람들이 다가와 내 몸을 들춰 들여다보고
목에서 그르렁 거리는 가래를 뽑아대거나 소변량을 체크하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피검사에 주삿바늘이 꽂힌 자리마다 피멍이 들고
맛도 못 느끼는 영양분을 콧줄로 투여받으며
손과 발은 퉁퉁 부어 몇 년이고 몇십 년이고 살려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생전 처음 보는 수많은 사람들 비명이 가득한 지옥 같은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서의 마지막만큼은 피하고 싶다.
제발 죽는 운이 좋기를 바랄 뿐.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언젠가는 겪을 수 있는 일이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 써본다.
가족 중 중증 환자가 있다면 아니 지금 아주 건강하더라도
평소 죽음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를 권한다.
사람들이 환자와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걸 꺼리는 경향들이 있는데
팔랑귀 대마왕과 나는 평소 이런 이야기를 농담처럼 많이 주고받았다.
"나 혼자 있다 죽었는데 너무 늦게 발견되면 어쩌냐?"
"걱정 마요. 제가 얼른 발견해서 이쁘게 수습해드릴 테니.."
많은 것들에 의견 일치가 안되는 두 사람이었건만
신기하게도 <죽음>에 대한 생각만은 정확하게 일치했다.
급하게 닥칠 때를 생각해 그동안 맨정신으로 이별 인사도 수시로 해두었다.
현재 의학기술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뿐 누구나 죽게 된다.
오는 길엔 순서가 있었으나 가는 길은 왔던 순서를 따지지 않는다.
이 세상에 어떤 경우도 기쁜 사별은 없다.
환자도 가족도 마음은 아프지만 편안한 이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살릴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대체하고 괴로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첨단 기계들과 독성 강한 신약을 이용해
어떻게 해서든 환자를 살려놓아야 하는 의사와 병원의 입장이 아닌
고통속에서 살아도 산게 아닌 환자와
내가 필요한 또 다른 가족의 입장에서 이성적이고 냉정한 판단을 해야한다.
누군가의 삶에 대한 희망과 투병 의지를 꺾자는게 아니다.
해볼 만큼 해봤으나 어떤식으로든 더 나아질 수 없고
연명 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상태까지 이르러 많이 위중하고 안좋아진 분들을 지켜봐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있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다.
인공호흡기는 일반적인 산소호흡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니 신중하게 결정해야한다.
한 번 인공호흡기를 달면 자가 호흡이 되기 전까지는 절대로 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가까운 이를 지켜보는 많은 분들이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아픔이 너무 크다.
산 사람을 그리워해본 적은 거의 없다.
어떤 이유로든 자주 못 보고 멀리 떨어져 산다 해도
같은 하늘 아래 있으니 마음을 안 먹을 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볼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내게 <그리움>이란 다시는 볼 수도 만져볼 수도 이야기 나눌 수도 없는
다른 차원으로 소풍을 떠난 사람들에 대한 감정이었는데
어쩌면 올해 <그리움>을 하나 예약해 놓은 건지도 모르겠다.
20년도 더 전에 소풍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는 게 아직도 진행 중이니
이 그리움이 다 하기 전에 나도 그리운 무리들에 합류하게 되겠지.
"있을때 잘 하라~!" 고 늘 구시렁대면서
할만큼 했으니 후회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아직 소풍 떠나신 것도 아닌데 벌써 몇 가지가 아쉬우니 이 노릇을 어쩐다지.
밥 드시다 말고 "너도 한 잔 할래?"
쓰윽 소주잔 밀어주시며 반병씩 노나 마시고 기분 좋아하던
그 옛날 보길도에서의 흐뭇한 장면은 이제 다시는 재현 불가한 과거가 되어버렸다.
추억이라는 합병증을 더 이상 동반하지 않을 때 그리움은 완치되는 건가.
그 사람의 존재 자체만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스며들 때
사람들은 뜻밖의 이별을 맞이하곤 한다.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 적당히 미워도 하며 다정하게 살 일이다.
(글이 너무 길어 좀 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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