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8. 전쟁과 코로나 그리고 자동차산업

2022. 10. 20. 22:35Finance, Biz

2020-03-31 10:35:11


112. 전쟁과 코로나 19, 그리고 자동차산업

글 : 채영석(charleychae@global-aut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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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24 14:34:59  

독일 메르켈 총리가 지금은 2차대전 때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세계의 경제 구조를 고려한 발언이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전쟁은 업종에 따라 산업을 오히려 발전시키기도 했다. 자동차와 선박, 항공기 등이 그것이다. 그에 비해 코로나19의 펜데믹은 GDP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제조업부터 서비스산업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정지된 상태를 만들어 버렸다.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글 / 채영석 (글로벌오토뉴스 국장)

 

2차 대전 때는 미국의 자동차회사들은 연합군은 물론이고 독일군에게도 군수용 자동차를 납품했다. 유럽에서도 많은 자동차회사가 초토화되었지만, 군용차를 납품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부 공장은 돌아갔다. 아니 오히려 전쟁을 계기로 산업적으로는 더 발전했다.

 

전쟁은 운송수단의 극적인 발전을 가져다주기까지 했다. 1차 세계 대전의 경우 자동차를 이용한 기동화 전쟁과 비행기를 이용한 육해공 입체전이 시작됐다. 땅에서는 군용 트럭과 장갑차, 바다에는 군함과 잠수함, 탱크, 하늘에는 전투기가 날았다. 근대식 기계화 전쟁으로 변한 것이다.


30여 년 동안 발전해 온 자동차의 기술이 없었다면 비행기와 탱크는 1차대전 때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20세기 인류 최대의 발명품인 자동차는 현대전쟁의 대량 살상무기의 기술적 바탕을 제공했다.

 

전쟁이 시작되자 참전국 자동차 업체들은 군용차와 비행기 엔진을 제작했다. 우선은 미군이 전쟁에 참여했던 1917년에는 포드 모델 T가 1만9천대나 유럽 전장으로 보내져 기동성을 높여 주었다. 다임러와 벤츠는 모두 군용차를 제작했고 BMW 자동차 사업의 전신인 ‘딕시’ 또한 전쟁이 시작되자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고 군수용품을 생산했다. 항공기 프로펠러 로고로 유명한 BMW는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에 설립돼 V형 12기통 전투기 엔진을 납품했다.

 

 

영국은 진흙탕 평야에서도 달릴 수 있고 포탄에 맞아도 뚫리지 않는 탱크를 개발했다. 자동차 바퀴로는 진흙탕에서 굴릴 수 없어 무한궤도를 발명했다. 최초의 탱크는 시속 6km 정도의 저속이었지만 참호전에서는 가공할 전투력을 과시했다.  바로 벤츠와의 기술제휴로 벤틀리를 제조하던 영국 다임러사의 105마력 엔진을 얹은 마크 원 탱크였다.

 

그러자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도 탱크를 개발해냈다. 그러면서 개발된 지 10년밖에 안 된 비행기를 포격 관측용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내연기관 엔진을 탑재한 전투기는 공중전의 위력을 보여 주었다. 제1차 대전 직전부터 소형 경비행기가 나타났다. 비행기를 전투기로 처음 사용한 유럽의 나라는 독일로 체펠린 비행선으로 벨기에 리에주에 폭탄을 투하했다. 1914년 8월에는 파리 철도역을 폭격해 민간인을 대상으로 폭격을 한 최초의 국가로 기록됐다.

 

1918년 봄 독일군의 공습으로 영국 민간인 1,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4,000명이 부생을 당했으니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영국은 개전 당시 전투기가 110대밖에 없었으나 1918년 종전까지 프랑스와 함께 10만대를 더 생산했다. 독일은 4만 4,000대를 생산했다. 그 과정에서 전투기의 기술과 산업은 엄청나게 발전했다.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전쟁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전쟁으로 살아난 회사로는 토요타도 빼놓을 수 없다. 토요타는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5년이 지난 1950년에 경영 위기에 빠지면서 노사 관계는 갈등으로 이어졌다. 노동자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인 생산 인원 감축, 즉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부실경영을 한 토요다 기치로 사장의 해임을 요구하는 토요타 자동차 노동조합의 총파업이 발생했다. 그 위기를 탈출할 수 있게 한 것은 1950년에 발발한 한국 전쟁이었다. 토요타는 이 전쟁에 5,000대의 미군용 트럭 대량 주문으로 인해 기사회생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완성차회사와 부품회사가 지금처럼 크게 분리되지 않았었다. 대부분의 자동차회사는 부품의 개발부터 완성차조립까지 일괄생산을 했었다.

 

그런 체제를 바꾼 것은 크라이슬러를 살린 리 아이아코카가 부품을 내부에서 30%를 만들고 70%를 외부에서 조달해 비용 저감을 추구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라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런 구조를 완전히 바꾼 것은 토요타를 비롯한 일본 자동차회사들이 촉발한 세계화(Globalization)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으로 연비성능이 좋은 차에 집중해 미국을 제치고 일본은 자동차 생산 대국이 됐다. 그 시기 일본은 미국을 제치고 경제 대국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을 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그러자 미국은 1985년 플라자합의를 통해 달러화의 가치를 내리고 엔화의 가치를 높이는 정책을 펼쳤다. 이른바 환율전쟁이었다.

 

그로 인해 일본 경기는 장기 침체에 빠졌고 지금은 짐 로저스의 표현대로 GDP 대비 국가 부채가 240%가 넘어 회생 불능의 상태에 처해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자동차산업은 달랐다. 이미 다국적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춘 일본차회사들은 새로운 형태의 성장을 거듭해서 지금은 전 세계 자동차의 1/3가량이 일본제다. 2019년 일본 자동차회사의 전 세계 신차 생산은 2,775만대로 해외 생산이 1,834만대, 일본 내 생산이 921만대였다.

 

토요타주의로 대변되는 생산 기술의 혁신은 결론적으로 고용을 창출했던 포드주의와 달리 자동화로 일자리를 없애기는 했지만, 그로 인해 일본 경제와는 상관없이 일본 자동차회사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날 글로벌 자동차회사들의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런 한편으로 자동차산업의 구조적 측면에서의 일본자동차회사가 촉발한 세계화와는 또 다른 양상을 만들어 낸 것이 중국이다. 중국은 2001년 WTO가입 당시 연간 200만대 수준이었던 자동차 생산이 2017년 2,800만대 수준까지 치솟으며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지금은 시장 독재의 상황이라고 할 정도로 글로벌 자동차회사들의 중국 의존도는 절대적이다. 폭스바겐과 GM은 전체 판매의 절반가량을 중국에서 이루어 내고 있다. 중국은 시장뿐만 아니라 부품 공급망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중국의 급성장과 함께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이 부품업체들의 대형화다. 20세기만 해도 지역 색채가 강했던 부품회사들이 완성차회사들의 세계화와 함께 현지 생산 및 납품으로 전략을 바꾸었고 그런 역량을 갖춘 업체들의 힘은 갈수록 커졌다. 특히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부품회사들의 인수합병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 전 세계 부품회사 중 30%가량이 대형 업체들에 인수되거나 파산했다.

 

그러면서 현대자동차의 울산 공장과 기아자동차의 아산공장, 르노삼성의 부산 공장, 한국GM의 부평공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보쉬와 콘티넨탈, ZF, 델파이의 공장이 들어서는 형태로 바뀌었다. 현대모비스와 만도, 현대트랜시스는 전 세계 현대기아차의 공장 근처에 공장을 건설해 부품 조달의 중심에 있다. 모듈화 기술의 발전으로 대형 부품업체들의 기술력은 20세기처럼 완성차회사들의 하도급 업체가 아니라 이제는 기술 주도의 메가 서플라이어로 오히려 상대적으로 우위에 서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페루의 구리 광산에서부터 희토류 생산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에 이르기까지 그 부품회사들의 모든 공급망을 와해시키고 있다. 조립공장 인근에 있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와이어링 하네스 공장까지 중국에 건설해 조달하는 현대자동차의 예에서 보듯이 자동차업체들에게 국경은 의미가 없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전 세계 공장이 75% 셧다운 상황에 부닥치면서 며칠 전 대책 회의를 통해 부품 재고량이 1~2개월이라고 발표했다. 통상적으로 자동차회사들은 1~2개월의 부품 재고율을 확보한다. 그러니까 재고율이 1~2개월이라는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이기도 하고 아직은 공급망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생산 공장은 조업을 중단한 상태이고 그것이 단기간 내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중국 내 공장이 재가동을 시작해 60%가량에 달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지만 적어도 5월까지는 비상 체제가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유럽은 그보다 더 오래갈 수도 있다.


코로나 19는 생산 중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이 이동하지 않으면서 판매도 중단된 상태이고 국경 폐쇄로 물류도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독일 국경이 폐쇄되면서 베를린 근처에서는 40마일의 도로에 트럭이 밀려 있다는 뉴스도 나왔다.

 

이런 상황 때문에 금융위기나 폭풍, 지진 등 자연재해 때와는 달리 그 많은 전문가 중 누구도 전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의 의견을 주로 전하는 미국의 자동차를 다루는 미디어들은 공장 셧다운 뉴스만으로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코로나 19의 펜데믹은 물론이고 그것을 이용한 인포데믹까지 가세해 나라에 따라서는 의미 없는 사재기 열풍이 벌어지는 등 비정상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일용직 노동자들부터 시작해 항공사와 여행사 직원에 이르기까지 가장 취약한 계층부터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재앙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을 가장 먼저 공격한다.

 

또한, 역사적으로 감염병은 인류의 삶의 형태를 바꾸어 왔다. 15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2억 명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은 교회의 권위를 무너트렸다. 기도만이 살길이라고 교회로 몰려들었으나 그로 인해 더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프랑스혁명만큼이나 사람들의 사고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준 것이 흑사병이었다.

 

20세기의 감염병은 전쟁과 세계화로 더 빠른 속도로 전파됐다. 스페인 독감은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감염시켰으며 100만 명의 사망자를 낸 홍콩 독감, 20만 명의 신종 플루, 그리고 사스와 메르스 등 감염병은 지속해서 인류를 괴롭히고 있다. 인수 공통감염병이라는 용어가 말해 주듯이 그것은 동물들의 터전인 삼림 훼손 등 환경 파괴의 또 다른 폐해다.

 

 

최근 국내 의료진들은 코로나19에 대해 관리할 수 있는 질병이라는 의견들을 내놓고 있다. 선제적으로 대응하면 종식은 어렵더라도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그런 인식이 다시 전 세계적으로 자리 잡을 때쯤이면 일상도 다시 서서히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무도 전망하지는 못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형태의 삶의 방식이 자리 잡을 것이다. 무선 결제가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는 정도는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직업에 대한 생각도 달라질 것이다. 물리적으로는 비대면 비즈니스가 더 폭넓게 자리 잡아갈 것이다.

 

자동차산업만으로 국한하자면 부품 공급망의 문제로 자국 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각자도생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의미 없는 전망이다. 이미 글로벌 자동차회사들은 국가를 넘어선 경제 주체로 세계 도처에서 자생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상태다. 오히려 20세기 말부터 시작됐던 Glocalization(Global 과 localization의 합성어)이 더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가장 중요한 것은 성장 시장의 규모일 수 있다. 코로나19의 진원지인 중국은 여전히 그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시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