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이어 이를 섭취한 뒤 분해하면서 CO2를 배출하는 동물이 등장했다

2024. 5. 8. 13:30수학,과학,공학

200년간 에너지 25배 더 썼는데…인간은 점점 무력해진다

[한겨레S] 남창훈의 생명의 창으로 바라본 사회
문명의 주체

화석연료 소비로 기후위기 역습
고집적 에너지 분쟁은 전쟁으로
지구 순환 깨뜨린 인간 성찰 필요

  • 수정 2024-05-05 13:30
  • 등록 2024-05-04 14:00
게티이미지뱅크

자연 속 인간의 지위는 무엇일까? 얼마 전 국제지질학연합 층서소위원회는 현 지질시대인 ‘홀로세’를 ‘인류세’로 전환하는 안건을 부결했다. 인류세 도입이 지금으로선 성급한 주장이라는 판단이다. 그러함에도 인류세 개념은 인간의 활동이 지구에 남긴 흔적에 대해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주었다. 지금 우리는 문명화의 부산물인 이산화탄소가 지구 대기 중에 급증하면서 기후 위기에 봉착해 있다. 자연 속에서 인류는 큰 역량과 파급력을 지닌 채 지구를 지배하는 듯 보인다. ‘인류세’ 도입 문제를 계기로 인류의 이러한 면모가 왜 자연에 내재한 생명의 속성과 심각하게 갈등할 수밖에 없는지 성찰이 필요하다.

 자해적 일탈 ‘인류세’

모든 생명은 물질과 에너지의 순환 속에서만 생존할 수 있다. 순환의 사슬은 거대하다. 지구권과 생명권은 서로 순환하며 지구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현존하는 가설에 따르면 대략 38억년 전 바닷속 열수분출구에서 에너지를 습득하고, 이산화탄소나 질소를 고정하여 유기물을 만들면서 원시 미생물이 발생했다. 그로부터 4억년 뒤 무산소성 광합성 생물이 등장한다. 이들은 태양에서 온 빛에너지를 가지고 수소나 황화수소에서 획득한 전자를 통해 일종의 광합성을 해서 생명을 구성했다. 전자 기증 물질이 점차 고갈되자 그걸 물로 대체한 생명체가 시아노박테리아(남세균)다. 이들은 소위 호기성 광합성을 수행하여 바다와 지표면에서 빛에너지를 흡수하고 방대한 양의 물을 통해 본격적인 광합성을 수행하면서 물을 산소로 전환해 배출했다. 이들의 광합성으로 발생한 산소는 우선 지표면에 존재하는 다양한 물질을 산화시켰다. 지표면 물질에 대한 산화가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되면서 산소는 지구 대기 중에 쌓이게 된다. 2억~3억년에 걸쳐 이 과정이 발생하면서 23억년 전 대기 중 산소 농도가 급증하는데 이를 ‘산소대폭발 사건’이라고 한다.

그 뒤 진화 과정에서 단세포생물이 시아노박테리아를 삼켜 세포소기관인 엽록체로 전환시키는 내부공생이 이뤄지고 대사 과정이 진화하면서 5억년 전 육상식물이 발생한다. 이들은 빛에너지를 받아들여 물을 산소로 바꿔 대기에 내뿜으면서 화학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이를 이용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뒤 변형시켜 포도당을 만들어냈다. 곧이어 이를 섭취한 뒤 분해하면서 산소를 이용해 에너지를 얻으면서 이산화탄소를 대기로 배출하는 동물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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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이처럼 쉼 없는 연쇄 속에서 태양이 건네준 빛에너지를 공기·물을 사용해 각양각색의 에너지로 바꿔 자기 몸에서 벌어지는 반응에 사용하면서 몸을 이루는 물질 속에 저장한다. 이 물질이 먹이사슬을 타고 돌다가 다시 지구의 일부가 된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빛에너지를 통해 광합성을 하는 식물들 속에서 환원돼 포도당이 되고, 생명체들은 살기 위해 포도당을 산화시켜 다시 이산화탄소를 형성한 뒤 대기에 배출한다. 이러한 산화환원의 순환은 단시간 내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무려 38억년에 걸친 생명의 진화 과정을 통해 아주 촘촘히 조정된 결과물이다. 인류세는 이처럼 고도로 조정된 지구권과 생명권 사이의 순환과 생명 개체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끊는 대규모 일탈이다. 1820년과 2020년 사이 200년간 인류가 사용하는 에너지는 대략 25배 증가했다. 그 증가분의 대부분은 화석연료에서 나온 것이다. 화석연료는 환원된 채 에너지를 담고 있던 생명체들의 몸이 지층에 묻힌 뒤 지각활동에 의해 더 깊은 지층으로 내려간 채 수억년에 걸쳐 고온 고압 상태에서 변형된 화학물질이다. 현재 인간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87%는 화석연료의 연소, 즉 산화에서 비롯된다. 이산화탄소는 결과적으로 태양의 복사에너지를 대기 중에 가둠으로써 기온을 상승시키는 온실가스 역할을 한다. 이로 인해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기후 위기를 절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더 큰 위기는 지구 내에 존재하는 오래된 순환의 전통이 깨지고 이를 복구하지 못한 채 정상궤도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도하게 배출된 이산화탄소 가운데 일부만 순환에 참여하고 나머지는 대기 중에 고스란히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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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고체가 부유하는 액체로

전세계가 화석연료를 연소시켜 374억t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얻는 에너지는 2022년 기준 14만테라와트시에 이른다. 인류는 이 에너지를 이용해 철강을 제조하거나 먹거리를 길러내고, 비닐과 플라스틱의 원료가 되는 화학물질을 얻어내고, 음식과 물건을 가공하며, 자동차나 비행기와 같은 운송 수단으로 먼 거리를 이동하거나 화물을 운송하며, 대형 건물을 짓고 불을 밝히고 냉난방을 하면서 거대 도시를 구축한다. 이 모든 과정에는 놀랍게도 집적된 고밀도의 에너지가 사용된다. 무심코 승용차를 운행하지만, 1.5t 승용차가 시속 100㎞로 달리려면 대략 말 50마리 이상의 파워가 요구된다. 이처럼 고도로 집적된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대량 생산·소비가 가능해졌고, 거대 도시들로 이뤄진 국가 체계가 구축됐으며, 급속한 세계화가 이뤄졌다. 200년 전과 비교할 때 인류는 25배에 이르는 에너지를 화석연료를 태워 쓰면서 같은 기간 120배가 넘는 경제적 성장을 이뤘다. 문명이 구축되고 유지되는 과정에는 폭발적인 양상으로 고집적 에너지가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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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주체를 인류로 간주할 때 자칫 착시현상에 빠질 수 있다. 문명화를 고스란히 인류의 역량으로 이뤘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문명화의 전 과정에는 고집적 에너지가 동력으로 쓰여왔고 쓰일 것이다. 동력 없이 문명은 유지될 수 없다. 인간의 역량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작다. 인간은 지구의 순환을 주도할 능력이 없으며, 우리 스스로 문명에 필요한 동력을 모두 창출할 수 없다. 인간은 오히려 문명을 통해 더 무력해진 면모를 지니게 됐다. 오랜 기간 진화를 통해 구축된 것과 고집적 에너지 사회에서 구현되는 인간의 양태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현대에 접어들어 나타나는 대부분의 질병은 이러한 간극에서 기원한다. 고체 상태처럼 서로 밀접한 유대관계로 구성된 가족과 마을 공동체에 고집적 에너지가 흡수되면서 사회 구성원들은 액체 속 입자처럼 들뜬 상태로 빠르게 부유한다. 고집적 에너지를 쓰는 삶의 공간에서 개체가 통제력을 갖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더 나아가 사회는 성장을 본래 지닌 속성으로 여기고 그 동력을 소유하기 위해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킨다. 최근 50년간 발생한 전쟁의 대부분은 고집적 에너지와 관련된 분쟁으로부터 촉발됐다.

재생되지 않고 순환되지 않는 고집적 에너지를 사용하는 문명의 성장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지금의 패러다임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현실 앞에서도 여전히 강력하다. 하지만 ‘인간의 자리는 어디인가’에 대한 심각한 성찰 없인 우리의 미래는 텅 비어 있다. 인간의 미약함을 깨닫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고민하는 것은 미래를 채워 넣는 첫걸음이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