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13. 14:29ㆍ수학,과학,공학
중력 끈은 원형으로 차원에 고정돼 있지 않다. 그래서 차원을 넘어설 수 있다.
2014-12-05 14:52:19
인터스텔라를 우리말로 옮기면 ‘항성간 여행’ 정도다. 태양계를 벗어나 다른 항성에 있는, 인간이 살기 적절한 행성을 찾는 여행을 뜻한다. 이 단어는 영화 자문을 맡은 킵 손 교수가 1988년 발표한 논문에 등장한다 <출처: warnerbros>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인터스텔라’가 누적 관객 800만 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스토리가 허술해서 영화로서의 재미가 없다는 평과 SF를 이 정도로 완성도 있게 만들 줄 몰랐다는 평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반응은 열광적이다. 영화를 직접 감상한 한국천문연구원의 과학자들과 함께 세 가지 관람 포인트를 짚어봤다.
영화의 스토리는 매우 단순하다. 지구는 인간이 살기 어려운 행성으로 변했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외계행성을 찾아 나선다. 전직 우주비행사인 주인공 쿠퍼가 우주 공간에서 사랑과 우정, 모험을 겪으며 얻은 데이터가 지구에서 그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딸, 머피에게 전달돼 인류를 구하려는,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배경 하나하나는 범상치 않다. 작가가 각본을 쓰려고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에서 4년을 공부했다더니, 역시 과학과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 태어났다.
“현존하는 블랙홀 이론을 모두 녹여낸, 완벽한 영화다”
- 박석재 연구위원, 블랙홀 전문가
박석재 연구위원은 영화의 백미로 에드워드 행성으로 가는 항로에 있는 블랙홀 ‘가르강튀아’를 꼽는다. 영화사상 그리고 천문학 연구 사상 블랙홀의 모습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했기 때문이다. 원래 블랙홀은 볼 수 없다. 빛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화 속에서 시꺼먼 블랙홀을 둘러싼 화려한 빛은 무엇일까. 원래 블랙홀 뒤에 있어 보이지 않아야 할 별빛이 블랙홀의 강한 중력렌즈 효과를 받아 휘면서 우리 눈에 보인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블랙홀의 중심이 주변 물질을 끌어당겨 원반을 만들고, 끌어당겨진 가스가 수축하며 빛을 내 원반이 빛나는 모습 그리고 중력이 원반을 뒤틀어서 만드는 무지개색 화염조차 사실적으로 구현해냈다. 박 연구위원은 “글자와 대략적인 그림만으로 알고 있던 현상이 눈앞에 영상으로 펼쳐지는 모습이 경이로웠다”며 이 작업을 해낸 미국 칼텍 교수인 킵 손과 영화 제작팀에 경의를 표했다.
어떤 영화에서도 웜홀이나 블랙홀을 실제적으로 묘사한 적은 없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블랙홀의 모습을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출처: 영화 [인터스텔라]>
놀란 감독은 주인공이 가르강튀아를 향해 갈 때 ‘커 블랙홀’과 펜로즈 과정을 이용해 극적인 이야기를 구성했다. 연료가 부족해지자, 로봇 타스와 쿠퍼는 자신이 탄 우주선을 분리시켜 블랙홀 안으로 밀어 넣고 아멜리아가 탄 우주선 본체를 에드워드 행성으로 보내는 데 성공한다. 이론적으로 제시된 ‘펜로즈 과정’을 이용한 것이다. 박 연구위원은 “영화 속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의미가 있다”며 “한 번 더 영화를 보며 매 장면을 곱씹고 싶다”고 말했다.
블랙홀은 회전하지 않는 ‘슈바르츠실트 블랙홀’과 회전하는 ‘커 블랙홀’로 나뉜다. 슈바르츠실트 블랙홀은 모든 블랙홀의 최종 진화 모형이다. 무엇도 빠져나갈 수 없어 ‘블랙홀’이라는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린다. 반면 영화에서 등장한 가르강튀아는 앞으로 슈바르츠실트 블랙홀로 진화할 ‘커 블랙홀’이다. 거대한 질량을 가진 항성이 수축, 회전하며 만들어진다. 회전하기 때문에 영화에서처럼 가운데 원반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1969년 로저 펜로즈는 커 블랙홀의 운동권(ergosphere)을 이용해서 거대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음을 증명했다. ‘펜로즈 과정’이라고 불리는 이론이다. 펜로즈는 운동권을 지나가는 물체가 둘로 나뉘어 한 쪽이 블랙홀의 안으로 들어갈 경우, 남은 부분은 블랙홀에서 막대한 에너지를 얻어 탈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5차원 공간을 초끈이론으로 풀어냈다”
- 송용선 이론천문연구센터 연구원, 우주론 전문가
일반상대성 이론을 제창한 아인슈타인은 말년에 전자기현상과 중력을 포괄하는 ‘통일장 이론’을 연구했으나 실패했다. 인터스텔라는 이 꿈을 이뤄줄 이론을 맛보기로 보여주고 있다. 쿠퍼가 블랙홀에 들어간 뒤 미지의 존재에 의해 들어가게 된 5차원 공간 안에서다. 송용선 연구원은 이 장면에서 “초끈이론이 숨겨져 있다”고 짚어냈다.
지금까지 알려진 자연에 존재하는 힘은 4가지로 중력, 전자기력, 강한 핵력(강력), 약한 핵력(약력)이 있다. 전자기력과 약력, 강력은 하나로 통일됐지만, 중력은 아직까지도 나머지 힘과 통일돼 있지 않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초끈이론이다. 우주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를 입자가 아니라 아주 작은 끈으로 보는 이론이다. 이 끈은 끊임없이 진동하는데, 진동하는 유형에 따라 고유의 성질이 생긴다. 또 수많은 차원에서 각각 고유한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각종 물리법칙에도 위배되지 않는, 마치 게임에서 깍두기 같은 존재다.
영화의 절정 부분에서 나오는 5차원 공간은 각본가와 감독이 첨단 현대물리 이론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참신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5차원 공간에 들어간 쿠퍼는 인류를 구할 중력방정식의 실마리를 머피에게 전달한다. 손 교수에게 자문을 받은 각본답게, 쿠퍼는 전달 방법으로 ‘중력’을 선택했다. 쿠퍼가 들어간 5차원은 시공간을 초월한 곳이다. 쿠퍼는 이 공간 안에서 자신의 과거와 머피의 현재 상황을 지켜본다. 위치와 장소를 자유롭게 옮겨 다닐 수 있지만 파동이나 빛, 전자기력으로는 시공간에 영향을 줄 수 없다. 가능한 것은 오직 중력뿐이다. 쿠퍼는 중력을 이용해 의사를 전달한다.
송 연구원은 “실제로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을 통과해서 5차원 공간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영화는 블랙홀의 극한성을 5차원 공간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삼아 현실과 허구를 그럴 듯하게 섞었다”고 설명했다. 현재로서는 5차원으로 넘어가는 방법은 당연히 없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차원은 점, 선, 면의 3차원 공간에 시간의 1차원을 더한, 3+1차원(4차원)이다. 초끈이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차원은 원래 10~11차원까지 있는데, 빅뱅 후 나머지 5~11차원이 수축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둥근 원형이었던 우주는 고차원 우주가 수축하면서 도넛 모양이 됐다. 이런 세상에서 전자기력이나 약력, 강력, 빛 등은 끈의 양끝이 4차원에 단단히 고정돼 있다. 그래서 이 힘들은 차원을 넘어서지 못한다. 하지만 중력 끈은 원형으로 차원에 고정돼 있지 않다. 그래서 차원을 넘어설 수 있다.
“구성성분 밝혀진 외계행성, 10개도 안 된다”
- 김승리 변광천체그룹장, 외계행성 전문가
주인공보다 먼저 인류가 살기 적합한 외계행성을 찾아 나선 나사로 대원 12명의 희생은 숭고했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토성 근처에 나타난 웜홀을 통과해 무작정 먼 우주로 떠난다. 각각의 행성이 실제로 어떤지 아무 것도 모른 채. 무모하게 보이는 이들의 탐험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인류가 살기 적합한 외계행성을 찾아 무작정 먼 우주로 떠난다. 위기를 헤치고 도착한 행성은 온통 얼음으로 가득하다. <출처: 영화 [인터스텔라]>
김승리 변광천체그룹장의 설명에 따르면 외계행성에 대한 정보는 그 행성에서 나오는 빛의 분광 스펙트럼으로만 간접적으로, 그것도 극히 일부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상에 있는 8~10m급 거대 망원경에서나 분석 스펙트럼을 얻을 수 있고, 외계 행성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서만 분광 스펙트럼을 얻을 수 있다.
심지어 영화처럼 웜홀이라는 필터가 있는 이상 지구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외계행성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화처럼 인간이 직접 가서 무엇이 있는지 확인한 뒤, 웜홀을 통해 정보를 보낼 수밖에 없다. 김 그룹장은 “케플러우주망원경이 발사된 뒤 외계행성이 7000~8000개나 발견됐지만 행성의 구성성분이 제대로 밝혀진 것은 10개가 채 안 된다”며 “앞으로 25m 거대 마젤란 망원경이 완성되면 외계행성에 대한 정보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행성은 항성 주변을 끊임없이 공전한다. 멀리서 보면 행성은 때로는 항성 앞에서 빛을 가리기도 하고, 항성 빛을 받아 반짝이기도 한다. 외계행성을 찾는 학자들은 이때 서로 다른 종류의 빛이 나온다는 것을 이용해 행성을 찾고, 어떤 성분이 있는지 찾아낸다. 예를 들어 행성이 항성 뒤에 있어 보이지 않을 때는 수소 스펙트럼 선만 보이다가 행성이 항성의 옆이나 앞에 와서 관측이 될 때 산소나 탄소 스펙트럼이 관측된다면 행성에 산소와 탄소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찾아낸 원소를 이용해 관측한 외계행성이 가질 수 있는 조건을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따져 모델링한다. 탄소와 산소가 따로 있는지, 일산화탄소(CO)상태인지, 이산화탄소(CO2)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얼핏 보면 간단한 작업이지만 수천, 수만 광년 떨어진 별에서, 그 주변을 돌고 있는 작은 행성에서 나오는 스펙트럼을 분석하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한 편의 영화를 위해 4년을 대학에서 보낸 조나단 놀란 (각본가)
인터스텔라를 우리말로 옮기면 ‘항성간 여행’ 정도다. 태양계를 벗어나 다른 항성에 있는, 인간이 살기 적절한 행성을 찾는 여행을 뜻한다. 흥미롭게도 이 단어는 영화 자문을 맡은 칼텍의 물리학자 킵 손 교수가 1988년 발표한 논문에 등장한다(‘Wormholes in Spacetime and Their Use for Interstellar Travel’).
킵 손 교수가 블랙홀, 웜홀과 관련된 방정식을 적고 있다. 영화 속에서는 머피가 이 칠판을 보고 플랜A에 대한 의문을 품는다. <출처: warnerbros>
손 교수는 주로 블랙홀과 중력파에 관련된 연구를 했고 우주와 시간, 중력의 관계를 가장 잘 정립한 학자로 꼽힌다. 스티븐 호킹, 칼 세이건과 친하게 지냈는데, 1975년 백조자리 X-1에 블랙홀이 있는지 여부로 호킹과 내기를 했던 사건이 유명하다. 결과는 블랙홀이 있다고 주장한 손 교수가 이겼다. 이처럼 천체물리학의 대가인 손 교수가 이 영화에 고문으로 참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손 교수와 함께 연구했던 김성원 이화여대 과학교육과 교수는 “미국에서는 영국의 스티븐 호킹과 견주어 뒤지지 않는 천체물리이론 연구가로 꼽히며, 대중과학과 문화에 관심이 많아 관련 인사와 꾸준히 교분을 쌓고 있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영화에 대한 자문을 하다가 블랙홀을 둘러싼 중력렌즈에 대해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밝혀냈다고 하는데 곧 천체물리학계와 컴퓨터그래픽학계에 각각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감독의 동생이자 이 영화의 각본을 쓴 조나단 놀란은 손 교수 아래서 무려 4년이라는 시간을 상대성이론과 웜홀 이론을 공부하는 데 투자했다. 완성도 높은 각본을 만들기 위해 칼텍에서 모을 수 있는 모든 인력을 끌어 모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영화 배경이 된 지구는 환경이 척박해지면서 마지막으로 남은 옥수수조차 병충해로 곧 사라질 운명이다. 조나단은 칼텍의 과학자들에게 여섯시간 동안 인류 멸망 시나리오를 자문 받았고, 그 중 가장 흥미를 끈 병충해를 종말 시나리오로 골랐다고 한다.
인터스텔라는 아무리 잘 만들어졌다고 해도 분명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한 허구가 있는 SF영화다. 항성간 여행을 하는 우주선과 우주에 임시 거주지를 만들 정도로 기술이 발달했다면 지구를 살기 좋은 곳으로 개조하는 것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영화가 품고 있는 현대 물리의 현장을 눈으로 직접 느껴보자.
제16회 ‘과학동아 카페’ 주제는 ‘인터스텔라’입니다. 한국천문연구원의 박석재 연구위원과 송용선 연구원이 여러분이 몰랐던 인터스텔라 속 과학이야기를 들려줄 계획입니다.
· 일시 : : 2014년 12월 13일(토) 오후 2시
· 장소 : 동아사이언스 본사 (서울 용산구 청파로 109)
· 대상 : 중학생 이상
· 참가비 : 1만원 / 추첨을 통해 20분께 무료 초대권을 드립니다. (1인당 2매)
· 신청기간 : 2014년 12월 1일(월) ~ 2014년 12월 11일(목)
· 신청방법 : 참가를 원하시는 분은 지금 바로 신청해 주세요~!
· 당첨자발표 : 2014년 12월 12일(금), E-mail을 통해 개별 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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