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13. 15:10ㆍFinance, Biz
G2의 힘 겨루기 (3)
FINANCE
2015-01-06 12:04:15
최근 미국의 주요 일간지나 경제지에서는 인수합병(M&A) 관련 소식이 자주 보도되고 있다. 글로벌 경기가 조금씩 개선되면서 전체적인 M&A 건수가 늘어나고 있고, 미국이 풍부한 유동성 자산을 동원하여 활발히 거래를 성사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중국의 거센 M&A 열풍이다. 중국은 과감하게 미국의 거대 기업들을 사들이며 글로벌 M&A 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의 해외 기업 M&A(지분투자 포함) 건수는 2014년 상반기에만 250여 건으로 거래 금액이 무려 439억 달러에 달한다. 전년 같은 기간의 171건, 323억 달러보다 건수는 46%, 금액은 36% 증가한 수치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위치한 레노버 스마트폰 공장 내부 <연합뉴스 제공>
이처럼 중국 기업들이 몸집을 불리는 배경에는 상품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기보다 아예 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사들여 단숨에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전략이 담겨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중국 기업들이 기술과 브랜드가 검증된 미국 기업들을 연이어 인수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배경이다. 4조 달러에 육박하는 세계 최대의 외환 보유고를 바탕으로 막대한 현금 동원력을 활용해 선진 기술, 신성장 동력 확보를 통한 사업 확장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도 한 몫을 했다. 무엇보다 중국 정부는 해외 기업 M&A를 통해 대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 중국은 고(高)성장기에서 중(中)성장기로 접어들고 있고, 경기 둔화와 부동산 침체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을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제조업 부문에서의 M&A를 통해 글로벌 대기업을 키워내 시장 집중도를 높이겠다는 심산이다. 중국에서 내수 독점 분야의 대기업은 급성장하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대기업 성장이 다소 지체되고 있는 것도 원인이다.
중국 정부는 이를 위해 M&A 관련 규제도 대폭 완화했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의 심사와 승인을 받아야 하는 해외 M&A 거래액 기준을 1억 달러에서 10억 달러 이상으로 무려 10배나 상향 조정했다. 이제 중국 기업들은 해외에서 10억 달러 미만의 M&A를 보다 자유롭게 추진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해외 M&A시장에서 국가발전개혁위원회의 심사, 승인 부담이 중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있는 만큼 이번 규제 완화는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중국 기업들에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국은 최근 자국 기업이나 개인이 해외에서 기업을 M&A하거나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하기에 용이하도록 외환 규정을 완화시켰다. 이전에는 기업들이 해외에서 발생한 이익과 배당을 180일 내에 의무적으로 본국에 송금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해외 법인에 계속 유보해둘 수 있다.
금융정보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은 2014년에 이미 사상 최대인 340억 달러 규모의 M&A 계획을 발표했다. 2013년 같은 기간의 210억 달러보다 62% 급증한 수치다. 중국은 무역흑자가 지속되고 있고, 외환 보유 비용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라 환율 안정을 위해서라도 달러를 해외로 유출해야 할 필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M&A 시장의 큰 손으로 자리 잡은 중국의 식욕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대 기업을 삼키며 미국에 도전장
에릭 슈미트(Eric Schmidt) 구글 회장이 모토로라 신종 스마트폰 출시 기자회견 중이다.(2012년 뉴욕) <연합뉴스 제공>
세계 1위의 PC 제조업체 레노버는 2014년 1월 구글이 가지고 있던 모토로라를 인수하면서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을 뒤흔들었다. 거래 금액만 29억 1,000만 달러(약 3조 원)에 이르는 이 거래로 레노버는 통신 기술 관련 특허 2,000건을 한번에 확보할 수 있었다. 레노버는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화웨이와 LG에 이어 5위를 차지하다가 모토로라를 인수하면서 단박에 3위로 올라섰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1위와 2위는 여전히 삼성전자와 애플이지만 3위와 4위에 위치한 중국 기업 레노버와 화웨이가 무서운 추격세로 시장 점유율을 높여 가고 있다.
삼성전자 갤럭시폰과 애플의 아이폰을 판매하고 있는 스마트폰 매장. <연합뉴스 제공>
레노버는 미국 IBM의 보급형 컴퓨터 서버 부분도 인수했는데 총 인수규모만 5조 원에 달했다. 이렇게 미국의 거대 사업체 두 곳을 매입하면서도 레노버 경영진은 필요하다면 다른 사업체도 더 인수할 의향이 있다고 밝혀 업계를 놀라게 했다. 실제로 레노버는 M&A를 통해 PC 시장의 1위 자리를 탈환한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모토로라 인수를 통해 스마트폰 분야의 더 큰 도약을 준비하려는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중국 최대 자동차 부품업체인 완샹(萬向)그룹은 2014년 2월 미국의 전기차 업체인 피스커를 1억 4,920만 달러에 인수했다. 2007년 설립된 피스커는 미국에서 테슬라와 함께 주목을 받았던 전기차 업체였으나 계속된 리콜과 연구·개발비(R&D)의 급증으로 경영난에 빠졌다. 결국 법원에 파산 신청을 한 피스커를 완샹그룹이 사들이면서 본격적으로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테슬라에 도전장을 내밀게 됐다. 2013년에도 완샹그룹은 미국 최대 배터리 업체인 A123을 인수한 바 있다. M&A를 통해 단기간에 글로벌 전기차 업계의 유력 주자로 떠오른 것이다.
피스커 오토모티브의 창업주인 헨릭 피스커가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전기 충전식 하이브리드 스포츠 세단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위의 두 사례는 미국의 거대 기업들에 대한 중국의 도전장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게다가 이들이 진출한 분야가 우리나라의 주요 먹거리인 스마트폰과 자동차 분야라는 점에서 우리와의 상관관계가 매우 높다. 우리의 가장 큰 대외교역 파트너인 미국 시장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이처럼 커지고 있는 상황은 우리 기업들과의 경합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 것임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두 얼굴의 미국
늘어나는 중국의 대미 투자로 인해 미국이 경제적으로 큰 이득을 보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미국의 컨설팅회사 로디엄그룹(Rhodium Group)의 자료에 따르면 중국이 투자한 미국 기업이 2013년 한 해 동안 창출한 일자리만 7만 개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2007년 대비 8배가 늘어난 수치다.
그런데 미국은 중국 기업들의 진출에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2008년 중국 통신장비기업 화웨이는 미국의 통신보안기업 스리콤을 인수하려다가 실패한 사례가 있다. 미국이 자국의 안보 관련 기술 정보가 유출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중국 난징 전시회 부스 <연합뉴스 제공>
미국 당국은 핵심 기술 유출과 안보 위기를 거론하며 수차례 M&A를 무산시킨 전적이 있다. 레노버의 모토로라 인수 건이나 완샹그룹의 피스커 인수 역시 여러 정치인들의 반대로 난항을 겪었다.
그러나 점차 미국 내에서도 차이나머니의 위력이 커지고 있어 상업적 실리를 위해 안보적 논리가 힘을 잃는 추세다. 중국 역시 5억 달러 미만의 인수에 공을 들이거나 합작회사를 만들어 비공식 협력 루트를 개척하는 등 우회 진출 방법까지 동원하며 미국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 중이다. 그 결과 2005~2007년 중국의 대미 투자 건수는 126건에서 2010~2012년 307건으로 144% 증가했다. 금액 기준으로는 같은 기간 25억 달러에서 165억 달러로 560% 늘어난 수치다.
또한 최근 미국 부동산 경기를 떠받치고 있는 게 중국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중국인들은 미국 부동산을 엄청나게 사들이고 있다. 뉴욕 맨해튼의 랜드마크이자 ‘대통령들의 호텔’로 불리는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TheWaldorf-Astoria)도 중국의 안방보험 그룹에 넘어갔다. 미국 고급 호텔의 살아있는 역사와도 같은 이곳이 중국 자본에 넘어가자 미국은 난감해하는 모습이지만 인수 금액은 호텔 거래 역사상 가장 큰 금액으로 기록됐다. 2014년 3월 기준으로 최근 1년간 중국인이 미국 부동산에 투자한 규모는 720억 달러로 직전해 같은 기간 대비 72%나 증가했다. 맨해튼의 부동산 중개업자는 ‘중국인들이 매물을 직접 보지도 않고 전화나 온라인으로 구매할 정도’라며 고개를 내젓는다. 중국인들은 주로 고가의 매물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연합뉴스 제공>
이처럼 미국 내에 차이나머니의 위세가 강해지자 미국도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이다. 안보 위기와 기술 유출을 우려하면서도 일자리 창출과 막대한 자금 유입의 유혹에 넘어가 오히려 중국 기업을 유치하려는 지방 정부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들의 식성이 바뀌다
기존의 중국은 주로 에너지, 인프라 등 자본재 분야 기업들을 대거 사들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 식음료 분야 기업에 대한 M&A가 두드러지는 추세다. 2014년 6월 기준으로 중국이 해외 기업을 M&A한 전체 거래 규모 가운데 식음료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7%에 달한다. 이는 전통적으로 중국이 왕성한 식욕을 드러냈던 에너지·전력 부문의 비중 20%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다.
중국 WH 그룹의 CEO 완룽(Wan Long)과 스미스필드푸즈 CEO 찰스 래리 포프(Charles Larry Pope)가 기자회견장에서 햄을 들고 있다.(2013.10.10) <연합뉴스 제공>
중국의 돼지고기 가공 업체 WH그룹(전 솽후이인터내셔널)은 2013년 5월 미국 최대 돈육 가공 업체이자 세계 돼지고기 수출 1위 업체인 스미스필드푸즈(Smithfield Foods)를 71억 달러에 사들이며 세계 최대 돈육 기업으로 부상했다. 중국 기업의 미국 기업 인수로는 역대 최대 규모이자 글로벌 육류업계 사상 최대 M&A였다. WH그룹은 스미스필드의 첨단 육류 가공 및 포장 기술 등을 도입함으로써 중국에서 생산된 식품에 대한 불신을 해소할 수 있었다. 또한 기존의 ‘솽후이’라는 이름을 WH그룹으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을 장악할 태세를 갖췄다. 특히 최근 중국의 돼지고기 연간 총 소비량은 5,530만 톤으로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소비량 5,340만 톤보다 많아졌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돼지고기에 대해서 “중국이 생산하고 미국이 소비한다.”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중국 기업들이 이처럼 글로벌 식료품 기업을 향해 눈을 돌리는 것은 경제 성장에 따른 중산층 확대로 중국 내에서 풍부하고 좋은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결과로 보인다. 소득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면서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진 덕에 중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 소비 쪽으로 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M&A도 식품이나 소비재 관련 기업에 대한 거래가 늘어나는 추세다.
중국 WH 그룹의 소시지 제품 <연합뉴스 제공>
중국의 미국 식탐은 지속될 전망
중국의 ‘미국 사들이기’ 열풍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풍부한 자금력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해외 투자 기회를 찾고 있는 중국 기업은 넓은 시장, 기술력과 브랜드, 숙련된 인력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미국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또한 중국 내에서 급등하고 있는 인건비 비중은 외국에서 생산해서 수출하는 것을 더욱 유리하게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2014년 9월까지 중국의 비(非)금융 분야 해외 투자는 750억 달러(약 78조 6,975억 원)에 달한다. 이는 직전 해 같은 기간에 비해 21.6% 증가한 수치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던 중국에 들어오던 외국인직접투자(FDI)는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 중국의 해외 진출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GDP 대비 M&A 규모 또한 0.279%로 이미 미국(0.257%)을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내에서 점차 커지고 있는 중국의 입김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됐다. 이제는 중국도 포스트 M&A를 준비해야 될 것으로 보인다. 유수의 미국 기업들의 기술력과 경영 능력을 중국이 어떻게 활용하고 운영할 지가 M&A 그 자체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Finance, Biz' 카테고리의 다른 글
780. 손해 보면 어때, 내 돈도 아닌데 (0) | 2022.10.13 |
---|---|
773. 구글 '파격 제안'의 속셈은? (0) | 2022.10.13 |
748. G2의 힘 겨루기 (2) (0) | 2022.10.13 |
747. G2의 힘 겨루기 (1) (0) | 2022.10.13 |
734. 자동차 부가세는 면제 아님 (0) | 2022.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