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0. [물리 산책] 양자암호___댓글웃김

2022. 10. 14. 20:55수학,과학,공학

2017-01-13 21:02:45


 

윷놀이는 수천 년 역사를 가진 우리 놀이다. 윷 네 가닥으로 돼지, 개, 양, 소, 말 등을 나타낸다. 주역은 음양론으로 세상만물과 그 이치를 설명한다. 스무고개는 ‘예/아니오’로 사물을 알아맞힌다. 이들 모두 디지털 정보혁명이 일어나기 전부터 0과 1의 ‘비트(bit)’를 사용했다. 비트는 ‘바이너리 디지트(binary digit)’ 즉 이진수라는 뜻이다. 윷의 편편한 면, 음양론의 음이나 주역과 태극기의 음효(--), 스무고개의 ‘아니오’를 0, 윷의 둥근 면, 음양론의 양이나 양효(―), 스무고개의 ‘예’를 1로 볼 수 있다. 우리말에도 비트는 있다. ‘이다/아니다’와 ‘예/아니오’가 대표적인 예다. 신경세포로 전달되는 생체신호도 세포막 안팎의 전위차가 +와 -로 표시되는 비트 정보다. 19세기 모스 전신부호나 20세기 전자식 통신 또는 정보처리 장치에 쓰이는 온/오프 스위치 방식 역시 비트다.

반도체의 한계 양자로 해결한다

리처드 파인만.

1959년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 1918~1988)은 캘리포니아공대(칼텍)에서 ‘바닥에는 아직도 더 넣을 여지가 많이 있다’라는 강연을 했다. 이 강연은 나노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이후 수 cm 크기의 진공관 스위치는 수 nm(나노미터, 10억 분의 1m) 크기의 트랜지스터로 대체되면서 메가바이트(MB), 기가바이트(GB), 테라바이트(TB)의 시대로 발전해 왔다.

그런데 이런 소형화 또는 반도체 소자의 집적화가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스위치가 원자 크기에 가까워지면 미시세계에서 통하던 여러 가지 양자역학적 효과가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0과 1이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아 정보가 불분명해지는 상황이 왔다.

1981년 파인만은 학생시절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했던 로스알라모스 국립연구소 40주년을 기념해 강연을 했다. ‘양자역학 법칙을 따르는 아주 작은 컴퓨터들’이라는 이 강연은 양자컴퓨터의 시대를 열었다.

원자나 전자 같은 양자역학법칙을 따르는 시스템은 개수가 늘어나면 비트를 사용하는 디지털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전자 한 개를 스핀만 따져서 ‘업(↑또는 1)’과 ‘다운(↓ 또는 0)’으로 나타낸다고 생각해 보자. 전자 두 개는 00, 01, 10, 11의 네 가지 상태만 있지만, 전자의 개수가 늘어남에 따라 계산해야 할 상태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디지털 컴퓨터로는 감당을 할 수가 없다. 전자가 10개이면 210, 즉 1024개의 상태, 20개이면 220, 즉 104만 8576개의 상태를 계산해야 한다.

파인만은 양자시스템은 디지털컴퓨터가 아니라 ‘양자역학을 따르는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디지털컴퓨터는 컴퓨터 자원을 늘리면 계산공간이 비례적으로 늘어난다(이를 ‘선형병렬성’이라고 한다). 하지만 양자컴퓨터는 계산공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또는 지수함수적으로 늘어난다(이를 ‘양자병렬성’이라고 한다). 계산공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양자의 특성을 이용해서다. 양자컴퓨터가 쓰는 정보의 단위는 비트가 아니라 ‘양자비트(quantum bit)’ 또는 ‘큐비트(qubit)’다. 비트는 0 또는 1을 나타내지만, 큐비트는 0인지 1인지 결정할 수 없는 상태, 즉 양자역학적으로 ‘중첩’된 상태를 나타낸다. 그런데 이 중첩 상태를 이용하면 더 크고 빠른 계산을 할 수 있다. 비트는 원자 크기에 가까워지면서 0과 1이 불분명해져 한계에 도달하지만 큐비트는 반대인 것이다.

창과 방패의 대결, 양자컴퓨터와 양자암호

새로운 컴퓨터의 능력을 테스트하는 문제로 ‘큰 수의 소인수분해’가 있다. 디지털컴퓨터로는 이 문제를 풀 때 숫자가 커질수록 계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자릿수에 따라 계산시간이 거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암호통신을 하는 데에 이용된다. 아무리 성능 좋은 컴퓨터를 동원하더라도 소인수분해로 만든 암호를 쉽게 풀 수 없기 때문이다.

1989년 만든 세계 최초의 양자암호장치.

이것이 요즘 많이 쓰는 ‘공개키 암호방식’이다. 보내는 사람은 공개된 문제를 이용해 자신의 메시지를 암호문으로 만들어 보내고, 받는 사람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답으로 암호문을 메시지로 복원할 수 있다. 비유하자면 어려운 문제는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공개된 자물쇠다. 물건을 꺼내려면 열쇠를 만들어야 되는데, 자물쇠 설계도가 있어도 열쇠를 만드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현재 디지털컴퓨터로는 문을 열 수 없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에 벨연구소의 응용수학자 피터 쇼어(Peter Shor, 1959~)가 양자컴퓨터로 소인수분해를 쉽게할 수 있는 양자알고리즘을 개발했다. 만약 이런 알고리즘을 수행할 수 있는 양자컴퓨터가 실제로 만들어진다면 소인수분해 방식의 공개키 암호문은 모조리 뚫리게 된다.

지난 8월 말 부산 부경대에서 열린 아시아양자정보과학 학술대회에 참석한 질 브라사드 캐나다 몬트리올대 교수(왼쪽)와 찰스 베넷 IBM 박사(오른쪽).

소인수분해 암호가 방패라면 양자컴퓨터는 새로운 창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같은 양자원리를 이용한 강한 방패가 나타 났다. 어떤 방식으로도 도청할 수 없는 양자암호다. 양자암호는 심지어 양자컴퓨터보다 먼저 실용화될 예정이다.

찰스 베넷 IBM 박사와 질 브라사드 캐나다 몬트리올대 교수가 1984년 발명한 이 암호는 통신당사자들이 양자역학을 이용해 일회용 난수표를 나누어 가지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어 1989년에는 최초로 양자암호통신 실험에 성공했다.

양자암호는 3D 영화를 볼 때 쓰는 특수안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극장에서 제공하는 편광안경의 왼쪽은 수직편광(↕)만, 오른쪽은 수평편광(↔)만 통과시킨다. 따라서 편광안경을 쓰고 영화를 보면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이 보는 화면이 달라서 3차원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동규가 제시카에게 비트 0이나 1을 보내기 위해 각각 대각편광(↗↙)과 역대각편광(↘↖)을 쓴다고 가정해 보자(수평편광과 수직편광을 쓸 수도 있다). 우리 한글 자음 모양을 이용하여 수평/수직편광 방식을 ‘ㄱ방식’, 대각/역대각 방식을 ‘ㅅ방식’이라고 하자. 양자암호통신에서는 비트 하나를 표현하기 위해 광자 하나, 즉 단일광자를 사용한다. ㄱ방식으로 보낸 단일광자는 ㄱ방식으로 측정하면 보낸 대로 비트가 정확하게 전달된다. 하지만 ㅅ방식으로 측정하면 비트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다.

편광 방식과 양자 암호 방식. 수직/수평편광과 대각/역대각편광을 읽을 수 있는 필터를 각각 ‘ㄱ방식’과 ‘ㅅ방식’이라고 한다.

만약 동규가 ㄱ 또는 ㅅ방식을 마구 섞어서 비트를 보내고(a), 제시카는 두 방식을 마구 섞어서 측정한다(b). 그러고 나서 갑과 을은 어떤 비트를 보내고 어떤 비트로 측정됐는지를 밝히지 않은 채, 각 비트(광자)에 대해서 송수신 방식이 ㄱ인지 ㅅ인지만 밝힌다(c). 만약 두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보내고 받은 비트는 100% 같을 것이고, 다른 방식으로 주고 받은 비트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둘 중 하나가 선정되기 때문에 50%의 확률로 맞거나 다르다). 이제 두 사람은 같은 방식으로 주고 받은 비트만 골라서 난수표를 만든다(d). 이렇게 만들어진 난수표는 세상에서 두 사람만이 갖고 있다. 다른 사람은 해독할 수 없는 맞춤형 암호가 생긴 셈이다.

양자 암호와 도청. 양자암호를 만들고 전달하는 과정이다. 동규가 제시카에게 암호를 보내기 위해 편광필터를 무작위로 골라 비트를 보낸다(a). 제시카는 동규가 어떤 필터를 쓰는지 모르는 채 ㄱ 또는 ㅅ방식으로 측정해 기록한다(b). 서로의 송수신 방식을 비교한 후, 도청 여부 확인을 위해 일부 비트를 비교한다(c). 같은 필터를 썼을 경우 비트가 정확하다. 정확한 비트만 골라 난수표를 만들면 다른 사람은 해독할 수 없는 난수표가 된다(d). 도청하면 잘못 읽는 경우가 50%여서 쉽게 찾아낼 수 있다(e).

도청도 불가능하다!

암호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는 중간에서 정보를 가로채는 행위, 즉 도청이다. 양자암호도 혹시 중간에 도청자가 ㄱ 또는 ㅅ방식으로 몰래 측정해 왜곡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양자상태는 측정하기 전과 측정한 후에 달라질 수 있다. 수평편광(ㄱ방식으로 측정해야 옳게 측정하는)인 단일광자를 ㅅ방식으로 측정하면 대각 또는 역대각편광으로 잘못 측정되며 확률은 똑같이 50%씩이다. 수평, 수직편광 수를 일부러 딱 맞추지 않는 한 우연히 나타나기 힘든 수치다(e). 또 이렇게 한 번 대각편광으로 측정되면 정보가 완전히 바뀌어 그 전에 어떤 편광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동규와 제시카는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중간에 도청이 있었는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양자정보학과 암호통신은 ‘병 주고 약 주는’ 관계에 있다. 양자컴퓨터가 나오면 현재의 공개키 암호방식은 무너지므로 ‘병 주는’ 관계이고, 양자암호로 도청이 불가능한 암호통신방식을 제공하므로 ‘약 주는’ 관계다. 미국의 국가안보국(NSA)을 비롯해 세계각국의 정보보안기관들은 암호를 풀기 위해 양자컴퓨터의 개발에, 절대안전한 암호통신을 하기 위해 양자암호의 개발에 주목하고 있다. 디지털 정보에서 양자정보로의 전환은, 실수의 수학에서 복소수의 수학으로 전환하는 것 같은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양자역학이 자연의 궁극적 원리인 만큼 궁극적인 정보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양자암호 연구

양자암호 실험연구로는 필자(고등과학원)와 부산 경성대 노태곤 교수(당시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연구팀이 2005년 25km 양자암호통신 실험에 성공한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 국내 통신회사 한 곳이 양자암호 개발에 착수했다. 홍정기 포스텍 교수는 1987년에 단일광자의 양자얽힘에 관한 실험을 세계 최초로 했고, 황원영 전남대 교수는 양자암호 전송거리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미끼(decoy) 양자암호방식을 연구했다. 노태곤 교수는 광자가 실제로 가지 않고도 간 것처럼 보이는 ‘반()사실적 양자암호’ 방식을, 필자는 큐비트가 아닌 ‘큐디트’ 양자암호방식을 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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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완 |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미국 텍사스 휴스턴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종합기술원 계산과학팀 전문연구원/팀장, KAIST 물리학과 연구 부교수로 근무했으며, 고등과학원 부원장 겸 원장직무대리를 지냈다. 번역서 ‘양자컴퓨터’와 40여 편의 연구논문을 썼다.인물정보 더보기
이미지동아일보, 이지희, 이미지 자료(노스웨스턴대/사이먼싱/토미 무어먼), 김재완, 찰스 베넷
발행201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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