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외조부님 떠나시던 날

2022. 11. 4. 18:06Unavoidable

 외할아버지가 떠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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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할아버지가 떠나던 날

3.
  병상에 의식 없이 누워계신 할아버지를 본다. 의사는 별달리 취할 조처가 없다며, 혈압과 맥박 등을 체크한 데이터를 보호자에게 보인다. "더 이상의 치료를 원하는 건 아니죠?"라고 의사는 묻고, 보호자는 "그렇다."라고 대답하며 서명한다.


  할아버지와의 이별이 임박할수록 짙어지는 건, 그의 죽음을 방조해야 한다는 무력감이자 그것이 주는 죄의식이었다. 애통하게 울고 있는 식구들에게 전할 말이 아무것도 없었다. "곧 괜찮아지실 거야."란 쓸모없는 거짓이 하도 공허해서 그저 무력하게 있어야 했다. 그렇게 한 번 더 그들을 방조한다.

4.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기골 좋은 여 간호사와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체구가 아담한 여 간호사 둘이, 개인 병실로 옮겨온 할아버지의 옷을 환자복으로 갈아입힌다. 알몸이 한꺼번에 드러나지 않게, 하늘빛 모포로 적당히 맨살을 가리지만, 드러난 부분들을 종합하면 할아버지의 알몸을 빠짐없이 목도하게 된다. 둘 모두 표정이 없이 빠르고 능숙한 손짓으로 자기들의 일을 이어간다.

5.
  할아버지의 음경에 소변관을 끼우고, 기저귀를 채운다. 콧구멍으로 산소호흡기 관을 넣고, 오른 아래팔에는 수액 바늘을 오른 위팔에는 심장박동측정기의 감지 벨트를 두른다. 심장박동측정기의 전원을 켜고 모니터에 나오는 수치와 그래프를 보는 방법을 간호사는 설명한다. 모니터에 나타난 두 개의 그래프는 심장박동수와 심전도를, 세 개의 수치는 체온, 산소포화도, 혈압을 나타내고 있다. 간호사는 분주한 걸음을 놀려 병실 밖으로 빠져 나간다.

6.
  천장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표정은 가쁘게 숨을 헐떡이는 모양에서 정지해 있다. 분명히 숨을 몰아쉬는데 그것은 표정으로만 드러나지, 코와 입을 통해 실제로 넘나드는 숨은 감지되지 않을 만큼 미약하다. 할아버지의 숨이 이제 정말 몇 줌 남지 않았다는 걸 실감한다. 활짝 벌어진 입 안 쪽으로 오물어진 입술이 치아가 부재한 자리까지 말려 들어가 있다. 목구멍에 최대한 밀착해 있어, 유난히 짧아 보이는 혀가 불투명 수채에 가까운 흰색을 하고 있다.

7.
  은빛으로 쇤 눈썹 아래로, 할아버지의 반쯤 뜬 눈은 초점 없이 천장의 한 지점에 고정돼있다. 나는 여전히 할아버지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지만, 그 눈에는 시력이 없었다. 시신경이든, 시신경의 감각을 수렴하는 뇌신경이든, 그 중 어느 한쪽이든, 아니면 양쪽 모두이든, 할아버지의 눈은 정상적인 시각작용을 하고 있지 않다. 할아버지의 뜬 눈은 시력이란 쓸모를 결여했다. 할아버지는 나를 보고 있지만, 나를 보고 있지 않는다.

8.
  암세포에 장악당해 흉측하게 변질된 할아버지의 오른뺨을 가리고저, 거즈가 두텁게 덧대어져 있다. 그 모양은 마치 복싱 선수의 헤드기어를 반으로 쪼개 한 쪽에만 착용한 듯하다.

9.
  소식을 듣고 달려온 친척들이 병실에 들어오는 족족,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호읍한다. 숨쉬기마저 아끼고 있는 할아버지는 그들의 연호에 눈물로 답한다.


10.
  변 냄새가 병실에 진동한다. 악취가 더 유난해지면, 역시나하며 기저귀를 간다. 위생장갑을 낀 채, 한 명이 할아버지의 하반신을 들면, 다른 한 명이 변이 범람하는 기저귀를 수습한다. 거기에는 드문드문 녹색 빛이 감돈다. 며칠째 수액만이 공급됐을 뿐인데, 이 엄청난 양이란 사리에 맞지 않다. 이 많은 배설물은 어디에서 오는가. 

11.
  물에 적신 수건으로 할아버지의 몸에 묻어있는 찌꺼기들을 닦아낸다. 찌꺼기가 제거된 자리에는 고동색으로 물든 자국이 여전히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 욕창 방지용 로션을 듬뿍 바른 후에, 새 기저귀를 채운다. 그 과정 내 할아버지의 하반신을 봐야한다.



❍ 임종: 2011. 2. 3. pm.11:17


12.
  할아버지가 병원으로 온지 이틀째 되던 날 밤 새벽, 친척 동생과 둘이 할아버지의 곁을 지킨다. 일종의 불침번이다. 혈압은 너무 미약해 계기가 짚어내질 못 하는 가운데, 느닷없이 60이하로 지속되던 심장박동이 갑자기 100을 상회한다. 인터콤을 눌러 데스크에 간호사를 호출한다. 나도 동생도 할아버지의 팔을 잡고 흔들며 부른다. 간호사는 심장박동측정기의 키를 몇 번 조작해보더니, 병실 밖으로 달려 나간다.


13.
  청진기로 몇 군데를 짚어본 의사는 가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그리고 휴대폰의 시계를 확인해, 할아버지의 공식 사망시각을 공지한다. 의사의 사망 선고로 할아버지의 사망시각이, 딱 그때로 정해진다. 1분 전에 청진을 하든, 1분 후에 청진을 하든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그에게는 죽음을 규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것을 새삼 깨닫는다.

14.
  식구들에게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간호사와 의사는 자리를 피한다. 동생과 나는 할아버지를 흔들며 통곡한다. 할아버지를 부르는 것 이외에 다른 말이 나오진 않는다. 불쑥 "다시 만나요."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종교인이든 아니든 우리에겐, 다시 만나요. 그 말 하나가 필요하다. 그 돌연한 한마디에 감정은 격하게 증폭되고, 나는 더 크게 통곡한다.


15.
  어머니에 전화를 건다. 진정되지 않는 목소리로 어머니께 할아버지의 임종을 알린다. 어머니는 나를 타일러 진정시킨다.

 


❍ 장례식, 염습 및 입관(인천의료원 장례식장): 2011. 2. 4.


16.
  장례식이 치러진다. 근 2년간 요양소에서 할아버지의 수발을 들던 요양사 분들이 문상을 하러 오셨다. 
 
  임종 전 고작 몇 번, 할아버지의 기저귀를 갈아 드릴 때면 나는 십 년 치의 스트레스를 한번에 끌어모아야 했다. 그리고 기저귀 갈기라는 고행을 한 차례 마칠 때면, 참고 있던 숨을 몰아쉬며 그래도 도리는 다했다며 우쭐해했다. 또 할아버지 안면에 도진 피부암 덩어리는 그 흉측함과 고약한 냄새 때문에, 경각일지라도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 내 온몸의 감각이 뒤틀렸다. 나는 한 번도, 도저히, 그것을 제대로 응시하지 못했다.
  
  사실 매일 밤낮으로 기저귀를 갈고, 환부를 드레싱하며 할아버지를 보살펴온 건 요양사 선생님들이었다. 나의 눈을 감아버리게 하는 일을 수년간 도맡아 온 건 그들이었다. 할아버지를 처음 응급실로 모셔 온 것도 요양사 선생님들이었고, 우리 식구들을 병원으로 불러들인 것도 요양사 선생님들이었다. 우리 식구들은 요양사 선생님의 요청으로 할아버지의 임종을 맞는 준비를 시작했다. 
 
  식장으로 들어오는 요양사 어르신들을 뵙자니, 오래 시간 그들이 짊어져 온 고행의 십자가가 내 두 눈에 생생하게 맺혀졌다. 그들은 그간의 노고에 대한 보상과 영광을 받아야 마땅했다. 그러나 우리 식구들이 전하는 감사와 칭송이 그들에게 가닿기도 전에, 그들은 우리 가족들을 위로하는 말로 그것을 튕겨내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에게 전하는 감사의 말 몇 마디를 듣는 둥 마는 둥하며, 도리어 우리 식구들에게 더 많은 위로를 전하고 있었다. 내가 건네는 감사의 말을 몹시 무덤덤하게 받고는, 틈 없이 나를 위로했다. 그러한 그들의 모습에 나는 여념없이 무너져 버렸다. 승질이 나서 그 자리에서 통곡했다. 그들의 불감증이 너무 중해서였다. 

17.
  병원 지하실에 마련된 시체보관소 옆, 염습실에서 염습을 집행한다. 설비 시설의 전반이 스텐 재질로 이뤄져있다. 두 명의 염습사가 한 조를 이뤄 염을 집행한다. 시신을 다루는 그들의 손매에 망설임 없는 절도가 깃들어, 숙연함을 자아낸다. 할아버지의 오른뺨에 있는 거즈는 그대로 둔다. 지켜보는 식구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그 이상을 생각해볼 수 없을 만큼 일그러져 있다. 

  "나 때문에 우리 아버지가… 나 때문에 우리 아버지가…"를 연호하며 오열하던 이모가, 끝내 실신한다. 나는 이모를 들쳐 엎고 응급실로 뛰어간다.

18. 퇴원 수속을 한다. 비용을 다 치르고, 할아버지의 주민등록증과 사망증명서 몇 부를 받는다. 주민등록증에 170821이라고 씌인 앞자리 수에 눈길을 한 번 더 준다. 사망신고서에는 사망사유를 피부암이라고 쓰고 있다.

 

❍ 발인, 화장(용미리 추모의 집): 2011. 2. 5.
 

19.
  화염이 할아버지의 관을 집어삼킨다. 이 장면을 지켜보는 식구들은 정신을 수습하지 못한다. 어머니는 그런 이모들에게 정신을 차리라며 꾸짖는다. 이제는 완전히 고아가 돼버린 엄마를 본다. 고아가 되기에 적절한 시기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그런 게 있긴 하는 거냐며.

20.
  화장을 마치고 남은 할아버지의 유골을 기사가 수습한다. 비와 받이로 그것을 한데 쓸어 모으고, 유골함에 담는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같은 대목에서 엄마가 해줬던 설명이 떠올랐다. 유골을 정성스레 다루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오해하지 말라고, 그들은 그저 일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그렇게 설명하던 엄마의 모습이, 그걸 듣고 있던 열 여덟살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21.

  9년 전에 안치한 외할머니의 유골함을 회수해, 할아버지의 유골과 한데 모아, 한 유골함에 담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유골이 모두 담긴 유골함을, 유골보관함에 넣고 봉한다. 보관함 앞에 작고 동그란 화환이 걸린다. 화한의 원 안으로 사진이 걸려있다. 사진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릴 적에 어머니 형제들의 모습이 있다.




***

* 지식채널e - 최고의 진통제



*시골의사 박경철 선생과의 트윗 대화


@yorqsong
  : 할아버지 임종 순간을 목격했는데요. 혈압은 미약해 계기가 짚어내질 못하고 심장박동만 있는채로 오래 지속되다가, 60이하이던 심장박동이 갑자기 100을 넘어가더라고요. 그리고 곧 운명하셨어요. 인간의 일생에서 엔돌핀이 최고조가 되는 순간이 임종직전이라고 들었는데요. 제가 목격한 그 순간이 바로 엔돌핀이 극대였던 순간이었을까요? 선생님께 답변을 들으면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chondoc
  : 그건 아닙니다. 혈압강하는 맥박 증가를 수반합니다.

 

@yorqsong
  : 최후의 순간에 갑자기 맥박이 급증하는 것은 분명히 목격했는데요. 그럼 제가 연결시키려 하는 임종 직전의 맥박과 엔돌핀의 상관은 제 주관적 믿음의 과장이고 객관적으로 연결시킬만한 것이 아닌가요?

 

@chondoc
  : 예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