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의 종말’ 시작됐다

2023. 10. 26. 10:42건강

‘치매의 종말’ 시작됐다

노진섭 의학전문기자·정윤경 인턴기자입력 2023. 10. 14. 10:08
음성으로 듣기
번역 설정
글씨크기 조절하기
인쇄하기
알츠하이머 겨냥, 116년 만에 첫 면역 치료제 ‘레카네맙’ 탄생
기존 치료제와 병행 ‘칵테일 요법’ 기대…한국은 경구용 치료제 개발

(시사저널=노진섭 의학전문기자·정윤경 인턴기자)

내년부터 국내 병원에서 새로운 치매 치료제를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일본은 올해 말쯤 새로운 치매 치료제를 사용한다. 기존 치매 치료제가 증상을 다소 완화하는 수준이라면 새로운 치료제는 치매 원인 질환인 알츠하이머를 정조준한다. 국내외 학계는 치매의 종말이 시작됐다고 평가한다. 이런 평가는 알츠하이머를 발견한 지 11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수십 가지 질환이 치매를 일으킨다. 그 가운데 알츠하이머는 전체 치매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가장 큰 원인 질환이다. 독일 의사가 알츠하이머를 처음 세상에 알린 1906년 이후 지금까지 이렇다 할 치료제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병의 원인을 명확하게 찾지도 못했다. 단백질 찌꺼기(아밀로이드-베타)가 뇌에 쌓이면서 생긴 독소가 뇌세포를 파괴한다고 밝혀냈을 뿐이다. 

ⓒ연합뉴스

2000년대 이후 아밀로이드-베타를 제거하는 치료제 개발이 시작됐다. 현재 140여 건의 치매 치료제 연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3가지 치료제(레카네맙·도나네맙·렘터네터그)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레카네맙은 이미 미국과 일본에서 사용이 승인됐다. 도나네맙은 미국에서 사용 승인을 기다리는 중이다. 렘터네터그는 최종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이들은 아밀로이드-베타를 제거하는 최초의 치료제다. 물론 아밀로이드-베타를 제거한다고 해서 알츠하이머를 예방하거나 완전히 치료할 수는 없다. 알츠하이머라는 병의 진행을 최대한 억제하는 수준이다. 그렇더라도 처음으로 치매 원인 질환을 표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레카네맙 등 최근 개발된 치매 치료제는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아예 막지는 못한다. 다만 병의 진행 속도를 약 25% 늦추는데, 3년 만에 나빠질 것을 4년으로 연장하는 셈이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큰 진전이다. 기존 치매 치료제(도네피질 등)는 증상이 있는 환자에게 사용했으나 최신 치료제는 증상이 없더라도 초기 치매 환자에게 사용해 아밀로이드-베타를 제거할 수 있다. 그리고 기존 치료제와 이번 치료제는 작용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래서 두 치료제를 병용하는 칵테일 요법을 기대할 수 있다. 암이나 에이즈도 단일 치료제만 쓰던 때보다 칵테일 요법을 시행한 후에 치료 성적이 크게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알츠하이머 치료제 레카네맙(상품명 레켐비) ⓒ로이터 연합

140건 치료제 연구 중…3건 가시화

지난해 11월29일부터 12월2일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알츠하이머 임상시험 학술회의장은 술렁거렸다. 새로운 알츠하이머 치료제 레카네맙(Lecanemab)의 최종 연구 결과(3상 임상시험)가 발표됐기 때문이다. 이 임상시험은 2019~21년 일본·중국·미국·유럽의 235개 의료기관에서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 1795명(50~90세)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들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의 치매 증상은 없으나 뇌 검사에서 아밀로이드-베타가 확인된 사람이다. 한마디로 치매 증상이 나타날 위험이 큰 이들은 투약군(898명)과 위약군(897명)으로 나뉘었다. 2주 간격으로 레카네맙(상품명 레켐비)을 정맥 주사로 맞은 투약군은 18개월 후 위약군보다 기억력과 사고력 감퇴가 27% 느려졌다. 치매 진행 속도가 약 7개월 늦춰진 셈이다. 이에 따라 삶의 질 저하도 56%나 억제됐다. 알츠하이머협회는 "레카네맙이 치매를 치료하지는 못한다. 잃었던 기억이나 인지 기능을 회복한다는 증거도 없다. 그러나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의 병의 진행을 의미 있게 늦춘다"고 평가했다. 

 

뇌에 쌓인 아밀로이드-베타가 제거된 결과다. 임상시험을 마칠 즈음 상당수 투약군에서 아밀로이드-베타는 정상 수준까지 제거됐다. 그날 회의장에 모인 학자들은 무엇보다 뇌에 쌓인 아밀로이드-베타가 제거되는 기전에 큰 관심을 보였다. 레카네맙이 직접 아밀로이드-베타를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이 치료제는 인간의 면역체계가 뇌의 아밀로이드-베타를 청소하도록 설계됐다. 병원균이 우리 몸에 들어오면 면역체계가 항체를 만들어 병원균을 제거하는 원리와 같다. 그래서 레카네맙은 면역 치료제로 불린다. 인간 면역체계를 이용한 면역 치료제는 이미 암과 같은 일부 질환에 사용하고 있다. 

레카네맙을 12개월 사용할 때보다 18개월 투여하면 효과가 더 좋아졌다. 연구를 진행한 미국 예일대 알츠하이머연구소장 크리스토퍼 반 다이크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는 더 큰 효과의 시작점일 수 있다. 치료 기간이 길수록 효과가 더 좋아진다는 것을 데이터로 알 수 있다. 이것이 사실인지 알기 위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 치료제를 18개월 이상 투여할 때의 효과에 관한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 임상시험 결과는 올해 1월 세계적인 의학지(NEJM)에도 실렸다. 이런 근거들을 인정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7월 레카네맙을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승인했다. 리처드 오클리 알츠하이머협회 연구부국장은 FDA의 정식 승인에 대해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종말의 시작점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일본 후생노동성 산하 약사식품위생심의회도 8월 레카네맙의 사용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미국과 일본의 의료기관은 10~11월부터 이 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유럽연합(EU)의 유럽의약품청(EMA)과 영국 당국은 이 치료제에 대한 승인 검토에 들어갔고 2024년 상반기쯤 사용 승인 여부를 밝힐 예정이다.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도 6월 승인 신청을 받고 현재 검토 중이며 이르면 연내 승인할 것으로 보인다. 

식약처가 이 치료제의 사용을 승인하면 국내 병원에서도 레카네맙을 사용할 수 있다. 치료 대상은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다. 미국 FDA도 이 치료제 투여 대상을 '아밀로이드-베타 수치가 높은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로 명시했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증상이 비교적 가벼운 사람에게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가 많이 진행된 사람에게는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아밀로이드-베타 수치는 PET-CT(양전자 단층촬영)나 MRI(자기공명영상) 검사로 확인할 수 있다.

 

또 치매 유전자(ApoE e4) 검사도 받아야 한다. 미국 FDA는 레카네맙 치료 시작 전에 치매 유전자 검사를 수행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이 유전자는 치매 치료제의 부작용 위험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김기웅 교수는 "전임상 치매(기억력 감퇴 등)·전구기(치매로 진행할 가능성 높음)·경도 치매에 레카네맙 등으로 아밀로이드-베타를 제거하면 매우 좋은 치료가 될 것 같다. 이런 초기 단계에서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거나 물건의 위치를 잊어버리는 등 기억력이 저하된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일상생활은 전과 같이 독립적으로 할 수 있다. 그리고 부작용 예방을 위해 치료 전에 치매 유전자 검사 등을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알츠하이머협회에 따르면 가장 흔하게 보고된 레카네맙 부작용(투약군에서 26.4%)은 주입 관련 반응(IRP)이다. 주사제를 투여하는 동안 열이 나거나 얼굴이 화끈거리거나 피부에 발진이 생기는 등의 부작용이다. 이 반응의 96%는 경증 또는 중등도다. 이런 증상이 생기면 잠시 중단했다가 다시 투여하거나 보조 약제를 사용해 해결할 수 있다. 또 다른 부작용은 뇌의 부종이나 미세 출혈이다. 투약군 12.6%에서 이런 부작용이 나타나며, 이 부작용은 MRI 뇌 검사로 확인할 수 있다. 이 부작용이 생기면 증상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치료제 투여를 몇 개월 미루거나 치료 부적합 판단으로 치료 자체가 중단될 수도 있다. 

이 치료제는 18개월 동안 2주 간격으로 정맥 주사로 투여된다. 1년치 약값은 미국에서 2만6500달러, 일본에서는 300만 엔으로 책정됐다. 우리 돈으로 약 3500만원이다. 본래 스웨덴 연구 기반 제약사 바이오아크틱이 개발을 시작한 레카네맙의 연구·개발·제조·판매에 대한 권리를 일본 제약사 에자이(Eisai)가 2007년 확보했다. 에자이는 2015년 미국 바이오젠(Biogen)과 공동개발에 합의하고 레카네맙 개발을 마무리했다. 

ⓒFreepik

비슷한 시기에 도나네맙·렘터네터그 내놓은 일라이 릴리

레카네맙에 대한 미국 FDA의 사용 승인이 나온 올해 7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국제 알츠하이머 컨퍼런스에서 또 다른 치료제 도나네맙(Donanemab)의 3상 임상시험 결과가 발표됐다. 그 결과는 미국의사협회지(JAMA)에도 게재됐다. 그 내용은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Eli lilly)가 18개월간 8개국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 1736명(60~85세)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시험 결과다. 투약군의 인지력 저하가 35% 억제됐다. 알츠하이머가 악화하는 위험도 39% 낮아졌다. 레카네맙처럼 아밀로이드-베타를 제거한 것이다. 

투약군의 약 50%는 12개월 만에 아밀로이드-베타가 제거됐는데, 그 비율이 18개월 차에는 72%로 높아졌다. 특히 타우 단백질 수치가 낮거나 중간인 환자군(1182명)에서 인지 또는 기능의 감퇴가 크게 지연됐고, 이들 중 47%는 1년까지 병이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이 연구팀의 주장이다. 아밀로이드-베타는 뇌 신경세포 기능을 방해하고 타우 단백질을 확산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밀로이드-베타와 타우 단백질은 모두 알츠하이머 발병에 관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부작용의 대부분은 경증이었다. 그런데 투약군의 1.6%에서 뇌부종과 미세 출혈 등 다소 심각한 부작용이 생겼고 현재까지 3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를 진행한 존 심스 박사는 "도나네맙이 타우 단백질 수치 중간 이하 환자에게 위약군보다 인지력 저하를 35% 늦추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일라이 릴리가 미국 FDA에 신청한 도나네맙 사용 승인 여부는 빠르면 올해 내에 결정될 전망이다. 일본 후생노동성도 현재 사용 승인을 검토 중이다. 일라이 릴리는 그 외 국가에서의 사용 승인 신청을 올해 내에 마무리할 예정이다. 만약 미국 등 국가에서 사용 승인이 나오면 레카네맙에 이은 또 하나의 알츠하이머 치료 선택지가 된다. 

도나네맙은 레카네맙과 같이 정맥으로 투여하는 면역 치료제다.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라는 치료 대상과 약효도 레카네맙과 비슷하다. 다만 아밀로이드-베타가 쌓인 정도와 신경세포의 형태(신경원섬유 매듭)에 따라 투약 시기가 다소 다르다. 이 치료제는 18개월 동안 4주 간격으로 정맥 주사로 투여된다. 약값은 아직 책정되지 않았지만 연간 1만4500~4만6900달러 선에서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돈으로 1900만~6200만원이다. 

더 빠르고 강력한 효과를 보이는 알츠하이머 치료제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는 3월31일 스웨덴에서 열린 알츠하이머·파킨슨병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새로운 치료제 렘터네터그(Remternetug)의 1상 임상시험 내용을 공개했다. 일라이 릴리는 2018년 11월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 41명에게 4주 간격으로 다양한 용량의 렘터네터크와 위약을 투여했다. 169일(약 6개월)째 검사 결과, 투약군 24명 중 18명(75%)에게서 아밀로이드-베타가 제거됐다. 환자의 72%에서 아밀로이드가 제거되는 데 18개월이 걸린 도나네맙보다 매우 빠른 결과다. 일라이 릴리 대변인은 "가장 높은 용량의 렘터네터그를 투여받은 환자 대부분에서 아밀로이드-베타가 169일째 제거되는 것을 확인했다. 이번 임상시험은 렘터네터그가 도나네맙보다 더 강력한 아밀로이드-베타 제거 능력을 가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2020년 시작된 2상 임상시험은 내년 1월 종료된다. 또 지난해 3상 임상시험도 시작됐고 2025년 종료된다. 이번 연구는 세계적으로 13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되는데 우리나라도 참여한다. 식약처는 3월8일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 60명(60~85세)을 대상으로 한 렘터네터그 3상 임상시험을 허가했다. 이 임상시험에는 정맥 주사가 아닌 피하주사로 치료제를 투여하는 방식도 포함됐다. 만일 피하주사로 치료제를 투여하고도 더 좋은 효과를 보인다면 그만큼 환자의 불편을 줄일 수 있다.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에 있는 일라이 릴리 본사.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시험에서 일라이 릴리가 개발한 도나네맙 투약군의 인지력 저하가 35% 억제됐다. ⓒ뉴시스

한국은 먹는 알약 개발 중…3상 임상시험 돌입

같은 효과라도 환자에게 편리하도록 투약 방법을 달리할 수 있다. 우리나라 의약품 개발업체인 아리바이오는 경구용 치매 치료제 AR1001을 개발 중이다. 정맥 주사를 맞으려면 환자가 병원을 찾아야 하고 1시간가량 투여받는 불편함이 있다. 그러나 입으로 먹는 알약은 그런 불편을 덜 수 있다. 발기부전 치료제 성분(미로데나필)을 사용한 이 치료제는 지난해 12월부터 미국에서 3상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국내 식약처도 8월29일 3상 임상시험을 승인했다. 한국 150명, 미국 600명, 유럽 300~400명, 중국 100명 등 모두 1200명의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를 대상으로 한 이번 연구는 2027년께 결과가 나온다.

이미 알츠하이머성 치매 환자 210명을 대상으로 한 2상 임상시험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나온 바 있다. 52주간 AR1001을 투여한 결과 타우 단백질 수치가 25% 이상 감소했다. 아리바이오에 따르면 AR1001은 신경세포 내 신호 전달 경로를 활성화하고 독성 단백질을 제거한다. 타우 단백질도 치매 원인 중 하나다. 이를 겨냥한 치료제가 곧 임상시험에 돌입한다. 국내 바이오 업체 오스코텍과 한 대학병원 의사가 창업한 아델이 개발한 치매 치료제 Adel-Y01은 타우 단백질 중에서도 정상 타우 단백질에는 작용하지 않고 알츠하이머를 일으키는 아세틸 타우만 제거하도록 설계됐다. 현재 미국 FDA에 1상 임상시험을 요청한 상태다. 임상시험 허가가 나오면 미국 의료기관 5곳에서 연구가 진행된다. 

☞ '치매의 종말' 특집 관련 기사
'치매의 종말' 시작됐다
생활 속에서 치매를 늦추는 방법은?
초고령사회 일본, 치매 대응에 정부·지자체 발 벗고 나서

Copyright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