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0. 현대 암호는 푸는 게 불가능 한 게 아니라

2022. 10. 13. 10:54수학,과학,공학

현대 암호는 ‘푸는 게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푸는데 시간이 너무 걸려서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대부분

기타

2014-07-30 22:45:42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 당대 최고의 과학기술은 국방으로 통할 때가 많다. 미국에서 하고 있는 굉장히 독창적이거나 재미있는 연구에 대한 기사를 보다보면 연구비를 지원한 기관에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1))이 있을 때가 꽤 많다. 미국 정부의 군사연구소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런 연구에 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광범위한 연구를 지원한다. 엄청난 계산능력을 자랑하는 슈퍼컴퓨터라고 예외일 리가 없다.

핵실험 위치 추적하는 슈퍼컴퓨터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위성사진

2013년 2월 12일 북한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우리나라는 지진파를 분석해 핵폭탄의 위력과 위치 등을 파악하려 했다. 미국에서는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최신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개발해 핵실험의 위치를 훨씬 더 정확하게 탐지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살사3D로 불리는 이 프로그램은 진짜 지구와 흡사한 3D 모형을 이용해 기존보다 26% 이상 정확하게 지하 핵실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미국 정보기관의 감청스캔들도 슈퍼컴퓨터와 관련돼 있다. 미국 정보기관은 휴대전화, 유선전화, 인터넷 등 수많은 통신기술을 통해 주고받는 정보를 감청한 뒤 분석했다. 우방인 독일 메르켈 총리의 휴대전화마저 감청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갈등이 일기도 했다. 유·무선 통신을 통해 얻어낸 정보의 양이 천문학적일 텐데 이 많은 것을 어떻게 분석해낼까. 또 대부분의 정보가 암호화되어 있을 텐데 어떻게 풀어낼까.

이때 연산 능력이 빠른 슈퍼컴퓨터가 등장한다. 미국 정보기관은 ‘딕셔너리(Dictionary)’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는데 이 프로그램은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정부, 법, FBI, 백악관, 스파이, 폭발, 핵, 대통령, 테러’ 등이 들어간 기록을 검색한다. 암호가 아무리 풀기 어렵다 해도 슈퍼컴퓨터의 능력이 방대하면 결국 풀어낼 수 있다. 현대 암호는 ‘푸는 게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푸는데 시간이 너무 걸려서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보기관은 하루에 30억 건이 넘는 정보를 분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슈퍼컴퓨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정보기관은 얼마나 많은 슈퍼컴퓨터를 이용하고 있을까.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미 국가안보국 본부는 메릴랜드 주에 8만 5000평의 슈퍼컴퓨터센터를 운용하고 있다. 이 곳에서 쓰는 전기만 100메가와트(MW)다. 국가안보국은 2016년 완공을 목표로 전력소비량이 60MW에 달하는 제2 슈퍼컴퓨터센터를 추가로 건설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미국 최고 슈퍼컴퓨터의 하나인 오크리지 국립연구소2)의 타이탄 시스템의 전력사용량이 8MW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방 분야에서 사용하는 슈퍼컴퓨터가 얼마나 방대한지 알 수 있다.

다양한 무기를 개발하는 데도 슈퍼컴퓨터를 쓴다.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는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다양한 공격방법에 대해 최적의 방어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공격이 시작됐다는 징후가 감지되면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정확한 방어전략을 마련해야 피해를 최소로 줄일 수 있다. 슈퍼컴퓨터의 엄청나게 빠른 연산능력도 이처럼 긴박한 상황에서는 부족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피해와 안전이 엇갈린다. 특히 미사일 요격시스템을 만들 때는 슈퍼컴퓨터로 다양한 가상실험을 해봐야 한다.

미국 국가안보국의 유타데이터센터 전경. 28,000평 규모에 65MW급 슈퍼컴퓨터 시설이다. 2013년 말에 완공했다. <출처: by Swilsonmc, at Wikimedia Commons(CC By-SA)>

슈퍼컴퓨터 믿고 출격하는 전투기

2013년 6월 17일 세계 500대 슈퍼컴퓨터 중 1위에 오른 것은 중국의 티엔허(天河) 2호다. 속도는 무려 33.86페타플롭스(1페타플롭스는 1초에 1000조번의 연산이 가능함을 뜻함)이다. 이 슈퍼컴퓨터는 중국 국방과기대가 개발한 것으로 세계에 중국의 과학기술 능력을 보여준 사건이다. 중국은 핵폭탄과 로켓, 인공위성 개발 등을 위해 슈퍼컴퓨터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최근 중국은 달에 무인 탐사선과 착륙선을 보내 성공시켰는데 이 뒤에도 슈퍼컴퓨터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

2013년 세계 슈퍼컴퓨터 1위로 등극한 중국의 티엔허(天河) 2호. 중국 국방과기대가 개발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사실 국방기술 분야는 외부에 많이 알려지지 않는다. 비밀이 많다는 이야기다.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분야에서 슈퍼컴퓨터를 쓰고 있을 것이다. 살짝 드러난 것 하나만 알아보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과 공군기상단은 2013년 5월 협약을 맺었다. 유사 시에 KISTI의 슈퍼컴퓨터를 이용하여 군의 작전 수행에 필요한 기상예보를 더 빨리 정확하게 구하자는 것이다. 기상 예보는 전통적으로 슈퍼컴퓨터가 많이 쓰이는 분야다. 복잡계로 불리는 기상은 워낙 예측하기 어려운데다 작은 요소 하나만 바뀌어도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국 공군의 전투기가 슈퍼컴퓨터의 기상예보를 믿고 멋지게 하늘로 출격하는 날이 올 것이다.

 

김선희 | 과학동아 기자과학전문 월간지 <과학동아> 기자. 2012여수엑스포에서 국내외 해양과학 우수사례(OCBPA)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일을 했다.

 

'수학,과학,공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724. 자주 멍 때리기  (0) 2022.10.13
723. eiㅠ+1=0  (0) 2022.10.13
716. 노력하면 된다? 글쎄..  (0) 2022.10.13
715. 인류가 차지하는 공간  (0) 2022.10.13
712. 기체분자들은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나  (1) 2022.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