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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가 부도의 날’을 계기로 돌아본 외환위기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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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31 11:38:08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을 계기로 돌아본 외환위기의 진실
공식
2018.12.26. 10:196,647 읽음
[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 ‘정책·금리·부채’ 등 총체적 관리 부실
- 1990년대 아파트 값 21.2% 폭락
[아기곰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 국가 부도의 날’이라는 영화가 극장가를 강타하고 있다. 21년 전 있었던 외환위기 사태를 소재로 한 영화다.
외환 위기가 발생하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하나하나가 나름대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작은 여러 원인이 모여 하나의 큰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예를 들어 감기 바이러스가 유행한다고 모든 사람이 감기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몸의 면역력이 약해진 사람이 바이러스에 노출될 때 감기에 걸리게 된다.
한 나라의 경제도 마찬가지다. 한두 개의 원인으로 나라가 휘청거리지는 않는다. 여러 개의 원인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그러면 외환위기가 발생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자.
◆ 단초가 된 ‘원화 강세’ 정책
첫째, 한국의 경제 체력이 상당히 약화됐기 때문이다. 당시 김영삼 정권에서는 자신의 임기 내에 선진국에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추진했다.
이를 위해 국민소득을 1만 달러 이상 유지할 필요가 있었는데 여기에서 한국인 특유의 고질병이 나타나게 된다. 실력을 쌓아 명문대에 들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일부 극성 학부모는 반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일단 명문대에 들어가 좋은 수업을 듣다 보면 실력이 쌓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족집게 과외 등을 통해 무리하게 명문대에 자녀를 입학시키려는 것이다. 김영삼 정권도 같은 오류에 빠졌다.
일단 선진국이 된 것을 선언하고 나면 나머지 일은 나중에 저절로 시간이 해결해 줄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하기 위해 원화 강세 정책을 쓰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국민소득이 1인당 800만원이라고 할 때 환율이 1달러에 1000원이라고 하면 달러 표시 국민소득은 8000달러(=800만원÷1000원)에 불과하게 된다.
그런데 환율을 인위적으로 800원으로 내리는, 다시 말해 원화 강세 정책을 펴게 되면 국민소득은 1만 달러(=800만원÷800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원화 강세 정책을 쓰게 된다.
시중에 달러를 계속 내다 팔면서 원화를 매입하는 정책을 쓴 것이다. 이 결과 1996년 330억 달러였던 외화보유액은 1997년 204억 달러로 급감했다. 하지만 원화 강세 정책을 쓰는 것은 수출 주도의 한국 경제에는 치명적인 악재가 된다.
어떤 상품(장난감)을 미국에 10달러에 수출하는 기업은 환율이 1달러에 1000원이었다면 이 회사는 그 장난감을 1만원에 파는 것과 같다. 하지만 환율이 800원이라면 그 장난감을 8000원에 파는 것이 된다.
그 장난감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원가는 같지만 물건을 팔아서 들어오는 돈이 적어지면 그 회사는 수출을 할 수 없다. 팔수록 손해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수입 업체에는 원화 강세가 호재다. 한 대에 10만 달러짜리 고급 승용차를 수입하는 업체는 환율이 1000원이었을 때는 한 대당 1억원에 수입해야 하지만 환율이 800원으로 떨어지면 자동차를 8000만원에 수입할 수 있어 가격 인하 효과가 생기면서 판매도 늘어나게 된다.
이에 따라 한국 경제 현실에 걸맞지 않은 원화 강세 정책이 수년간 지속되면서 수출이 줄게 되고 수입은 늘어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1990년부터 1997년에 이르기까지 1993년 한 해를 제외하고 경상수지 적자의 늪에 빠지게 된 것이다.
특히 OECD 가입이 확정됐던 1996년 경상수지 적자가 무려 230억 달러에 달하기까지 했다.
그러자 부족한 외화를 단기 부채로 끌어다 쓰기 시작했다. 1996년 한 해에만 해외에서 219억 달러를 들여왔다. 단기 부채를 들여와 환율 방어에 썼던 것이다.
둘째, 사태를 더 악화시켰던 것은 종합 금융사 등 일부 금융회사의 무분별한 차입 행위 때문이었다. 그 당시 한국의 국가 신용도는 동남아 국가보다 높았다. 상대적으로 동남아 국가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했던 것이다.
◆무분별한 차입과 단기 부채 급등
그러자 일부 금융회사들이 상대적으로 싼 이자로 외채를 들여와 동남아 국가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금리 차이를 이용해 쉽게 돈을 벌려는 것이었다. 이 자체도 위험한 발상이지만 이런 금리 차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단기로 돈을 빌려와 장기로 돈을 빌려 주는 행위를 한 것이다.
시장금리라는 것은 불확실성에 비례한다. 원금 회수 기간이 많이 남은 장기금리는 위험하므로 금리가 높은 편이고 원금 회수 기간 짧은 단기금리는 금리 수준이 낮은 편이다.
한국의 고신용도를 발판으로 낮은 단기 부채를 들여와 동남아에 장기로 돈을 빌려주는 종합 금융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부채가 급증하게 된 것이다.
셋째, 이렇게 경상수지는 줄어들고 단기 부채는 급증하는 상황에서, 다시 말해 면역력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동남아 국가들이 먼저 외환위기를 겪게 된다. 감기 바이러스가 퍼지게 되는 것이다.
태국이나 인도네시아에서 외환위기 사태가 발생하면서 주변국으로 이런 사태가 퍼져 나가자 외국자본은 아시아에서 손을 빼게 된다. 달러를 주로 단기로 빌려와 쓰고 있던 한국에 발등의 불이 떨어지게 됐다.
외국 채권자들이 채무 상환 연장을 거부했고 당연히 만기 때 연장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고 무분별하게 빚을 끌어다 썼던 것이 부메랑이 돼 한국 경제를 강타했다.
일본계 자금이 동시에 썰물 빠지듯이 빠져나갔다는 설도 있는데, 1990년부터 일본도 잃어버린 10년에 들어서는 등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남의 나라 사정을 봐줄 만큼 여유롭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1991년 4월부터 1998년 11월까지 약 8년의 기간 동안 한국의 아파트 값은 21.2% 하락했다.
1990년 초의 1기 신도시 대량 공급과 1998년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확대라는 원인이 있지만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의 시기와 맞물린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3호(2018.12.17 ~ 2018.12.2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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