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5. 철수를 앞두고 까르프는 왜 매장을 늘렸을까

2022. 10. 19. 14:36Finance, 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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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9 12:28:51


협상력의 차이를 결정짓는 것은 'BATNA'

2019.02.15. 14:1913,201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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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대안, BATNA
스타트업 대표 A는 기회가 닿아 벤처캐피탈(이하 VC)을 만나더라도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드는 느낌이다. 기껏 준비한 IR자료를 설명하다가도 어느 순간 그들이 우리의 서비스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먼저 시무룩해져서 IR자료를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한 채 돌아오고 만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IR자료들을 검토하는 VC를 본인의 회사에 투자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반면 스타트업 대표 B는 요즘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새로 출시한 서비스가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데, 서비스가 출시되자마자 여러 VC들이 접촉해오기 시작하더니 한 달 동안 무려 5개의 VC들과 미팅이 예정되었다. B는 지인들에게 연락해서 업계에서 어떤 VC의 평판이 좋은지, 그리고 자신들의 사업 영역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은 VC는 어디인지 알아보고 있다. 일단 몇 차례 미팅을 가진 후, 가장 마음에 드는 곳에서 '시리즈 A' 투자*를 받을 생각이다.
* 프로토 타입 또는 베타 버전에서 정식 제품 또는 서비스로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받는 투자
 
상대방에 따라 협상이 아주 힘들 때도 있고 상대적으로 수월할 때도 있다. 이렇듯 협상테이블에서 상대방과 당신이 가진 협상력의 차이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협상력이 자신의 경제력이나 정치력, 인맥, 외모 등의 요인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하지만, 해당 거래가 결렬되었을 때 각자에게 얼마나 매력적인 대안이 있는지가 협상력의 차이를 결정짓는 가장 핵심 요인이다.
 
다시 위의 예로 돌아가보자.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A와 B 모두 VC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고자 한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다르다. A는 VC에게 쩔쩔매고 있는 반면, B는 오히려 VC 중 마음에 드는 VC를 선택하는 입장이다. 이러한 협상력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핵심개념이 바로 BATNA(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이다. BATNA는 '이번 협상이 결렬되었을 경우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을 의미한다.
 
위 사례에서 A는 BATNA를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 즉, 해당 VC와의 거래가 결렬되었을 때 취할 수 있는 대안이 거의 없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A는 상대방에게 끌려다닐 수 밖에 없다. 반면 B는 다수의 매력적인 BATNA를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B는 굳이 특정 VC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해당 VC가 아니더라도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상호 간의 협상력의 차이를 결정짓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바로 BATNA인 것이다.

협상 인사이트

BATNA의 관점에서 볼 때, 자신의 협상력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은 단순하다. 상대방을 압박할 수 있는 매력적인 BATNA를 확보하라. 그리고 상대방이 나를 대체할 수 있는 BATNA를 찾기 힘들게 하라.

위의 예에서 스타트업 대표 B는 위의 두 가지 요건들을 모두 충족하고 있기 때문에 강력한 협상력으로 VC를 압박할 수 있다. 상대방을 대체할 수 있는 BATNA를 많이 확보하고 있고, 상대방이 본인을 대체할 수 있는 BATNA를 찾기 힘든 상황에서, B는 아쉬울 것이 없는 포지션에서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 반대로 A는 위 두 가지 요건들 중 어느 하나도 갖추지 못한 상황이다. 이 경우 A는 굴욕적인 경험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에서 협상을 시작하게 된다.
 
우리는 비즈니스 상황이 아닌 일상생활 속에서도 BATNA의 유무에 따라 결정되는 협상력의 차이를 수도 없이 겪고 있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대학가에는 '불친절한 맛집'들이 있다. 필자가 대학을 다닐 때에도 대학로 주위에 기가 막힌 닭볶음탕집이 있었는데, 이 닭볶음탕집을 운영하는 할머니는 학생들이 들어와도 본체만체하고, 뭘 주문할 건지 묻지도 않으며, 본인 마음대로 적당한 양의 닭볶음탕을 요리해주신다. 물론 물, 반찬 등은 모두 셀프이고, 할머니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 가면 경상도 특유의 걸쭉한 욕지거리도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꾸역꾸역 그 집에 가서 닭볶음탕을 먹는다. 할머니 눈치를 살피며 불편하게 닭볶음탕을 먹어야 하는 것을 잘 알면서도 학생들이 이 집에 가는 이유. 그것은 맛에 있어서 만큼은 이 닭볶음탕집보다 더 나은 대안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대체불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위대한 것들, 잘 팔리는 것들의 공통점은 바로 대체불가능성에 있다. 협상학적으로 설명하자면 'BATNA를 찾기 힘든 존재'들은 필연적으로 갑이 될 수 밖에 없다.

골리앗을 이기는 다윗의 무기
경남 지역에 대단한 기업이 있다. 3대째 자동차 부품을 제조하는 ㈜센트랄 그룹(이하 센트랄). 그들은 오랫동안 국내 완성차 업체에 자동차 부품을 공급해왔지만 구조적인 한계에 도달했음을 절감했다. 한국의 절대 갑의 포지션에 있는 국내 완성차 업체들을 대상으로 제품을 생산하다보니, 그들에게 늘 끌려다닐 수 밖에 없고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경쟁력도 점점 떨어진다고 판단한 것이다.

BATNA를 찾기 위한 10년 간의 노력,그리고 놀라운 결과
그래서 센트랄은 1996년부터 전략을 전면 수정했다. R&D 투자를 대폭 늘리고 국내시장을 벗어나기 위해 북미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R&D 투자를 통해 '대체불가능한 부품'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함과 동시에, 국내시장을 벗어나 매력적인 완성차 브랜드(BATNA)들이 몰려 있는 북미시장과 유럽시장을 공략한 것이다.
 
지속적인 R&D 투자와 시장 다각화 노력은 조금씩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2017년 현재 센트랄은 북미 뿐만 아니라 유럽까지 시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GM·크라이슬러·포드 등 북미 빅 3사는 물론이고, 벤츠, BMW, 아우디 등 유럽의 고급 완성차 브랜드에도 제품을 공급함과 동시에 전 세계 전기자동차 브랜드의 대세인 테슬라도 센트랄의 클라이언트가 되었다.
 
국내시장에 국한해 부품을 제조, 판매하며 국내 완성차 업체에 쩔쩔 매던 기업은 대체불가능한 존재가 되기 위해 대규모 R&D 투자를 통해 매력적인 BATNA를 마련했다. 지금은 전 세계 113개 업체(고객)에 3천여 종의 부품을 공급하며 전체 매출액 중 수출 비중이 70%가 넘는 알짜기업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센트랄은 더 이상 국내 완성차 업체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한 경쟁력과 협상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에 따라 센트랄의 기업경쟁력도 강화되었고, 매출도 무섭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2007년 기준 매출액 3,088억에서, 지난 10년 간 평균 15%대의 고성장을 계속하며, 2016년에는 매출액이 무려 1조1,100억 원을 기록했다. 2021년에는 매출액 2조 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센트랄의 사례는, 다윗이 골리앗을 상대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기업경쟁력 재고 및 협상 전략의 핵심이 BATNA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센트랄 미래기획실 강상우 부사장님과 ⓒ류재언
협상 인사이트

당신의 협상력은 BATNA의 유무에 따라 결정된다. 상대방을 압박할 수 있는 매력적인 BATNA를 확보하라. 그리고 상대방이 나를 대체할 수 있는 BATNA를 찾기 힘들게 하라.

까르푸의 성공적인 M&A
까르푸는 월마트에 이어 세계 2위 유통업체다. 1996년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서 처음 문을 연 까르푸는 2000년 말까지 19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등 1조8천억 원을 한국 시장에 쏟아부으며, 당시 1위인 이마트를 추격했다. 하지만 까르푸는 '현지화'에 실패하면서 선두였던 이마트는 물론 후발 주자인 홈플러스와 롯데마트에게도 추월당했다.
 
결국 2005년, 한국 진출 10년 만에 까르푸는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철수를 앞둔 까르푸가 국내 시장에서 보여준 첫 번째 움직임은 무엇이었을까?

놀랍게도 까르푸는 1년 간
다섯 개의 대형 할인점을
연달아 오픈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인수의향이 있는 기업에게 가장 매력적인 상태에서 최적의 조건으로 매각을 진행하기 위해 매각을 코앞에 둔 시점에 오히려 점포수를 늘리는 승부수를 띄웠던 것이다.

그 결과 2006년 2월 매각 관련 설명회를 개최했을 당시, 까르푸는 32개의 매장에 7천여 명의 직원수를 보유하며, 경쟁이 치열한 국내 할인점 시장의 판도를 단숨에 뒤바꿀 수 있는 강력한 임팩트를 가진 매물로 떠올랐다.
 
당시 업계 2위 홈플러스와 3위 롯데마트는 까르푸를 인수할 경우 그동안 압도적인 1위였던 이마트와 점포수가 불과 4~5개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사실상 업계 1위까지 넘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또한 업계 4위 이랜드 역시 까르푸를 인수할 경우 2위권으로 진입할 수 있는 절묘한 상황이었다.
 
즉, 까르푸는 매각 협상을 시작하기 전에 5개의 매장을 늘리는 것으로 매각 협상 시 다수의 매력적인 BATNA들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고, 까르푸의 전략은 정확히 적중했다.

2006년 4월, 할인점 업계의 1위 기업부터 4위 기업까지 모두 까르푸에 대한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 업계의 Big 4가 모두 인수의향을 밝힌 상황에서 까르푸의 몸값은 자연히 치솟았다. 그중에 가장 공격적이었던 기업은 롯데마트. 롯데마트는 1조5천억 원~1조7,500억 원을 제시한 다른 기업들과는 달리 1조9천억 원이라는, 압도적으로 높은 금액을 제시했다.
 
하지만 사전 실사(Due Diligence)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예상보다 까르푸가 부실하다는 판단을 내려, 인수금액을 1조7천억 원으로 조정했다.
 
이렇게 되자 당시 1조7,500억 원을 제시한 이랜드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고, 이랜드는 까르푸가 요구하는 부대조건(고용승계, 기존 납품업체와의 계약승계 등)들을 대부분 받아들이며 최종적으로 까르푸를 인수하게 되었다.

그러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까르푸 인수전이 진행되는 동안,
업계 1위인 이마트는 조용히
또 다른 딜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마트는 까르푸가 업체들 간의 경쟁을 유발시키며 몸값 올리기에 박차를 가하자, 일찌감치 BATNA인 월마트를 인수 대상으로 삼고 조용하게 인수합병을 추진해왔다. 당시 월마트는 전국에 16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마트는 월마트코리아를 성공적으로 인수하여 국내 95개의 점포를 확보하며 할인점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게 된다.
 
이렇듯 기업의 M&A협상에서도, 기업들은 BATNA를 확보하여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며,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새로운 BATNA를 확보하여 협상 결렬 상황에 대비한다.

참고 자료
'말 많던 까르푸, 이랜드에 팔렸다' (동아일보, 2006.4.29)
'이랜드, 한국까르푸를 1조7,500억 원에 인수' (동아닷컴, 2006.4.28)
'이마트, 월마트 삼키고 '부동의 1위' 지킨다' (한겨레, 2006.5.22)
'까르푸 인수, 1년 3개월의 눈물' (경향비즈, 2007.7.11)

BATNA를 찾기 힘든 상황에서의 협상
"협상하기 가장 힘든 사람은 누구인가요?"라는 질문에 당신은 어떤 대답이 떠오르는가? 많은 사람들은 주저 없이 자신의 배우자를 꼽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협상하기 가장 힘들고, 설득하기 가장 힘든 사람은 바로 내 아내이다. 배우자가 협상하기에 가장 힘든 사람으로 꼽히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 나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다.
- 자기 할 말만 하고 대화가 안 통한다.
- 이해관계인들(아이들, 부모님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경우에 따라 각기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배우자가 협상하기 가장 힘든 사람으로 꼽히는 데는 한 가지 공통된 이유가 있다. 배우자와의 관계는 BATNA를 찾을 수 없는 관계라는 점이다. 친구 관계처럼 다른 BATNA를 찾을 수 있는 관계라면, 상대방이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 '앞으로는 저 친구 대신 다른 친구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친구를 멀리 할 수 있다.
 
하지만 배우자나 가족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싫든 좋든 매일 볼 수밖에 없고 상대방이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하더라도 BATNA를 통해 압박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자와의 협상은 항상 힘들고, 에너지 소모가 극심하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당선 비하인드
19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나선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전직 대통령. 제26대 대통령을 지낸 그는 자신의 최측근이자 친구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William Howard Taft) 제27대 대통령의 국정 운영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자 제28대 대통령 후보로 다시 정계에 복귀했다.
 
당시 어느 때보다 치열한 선거전이 계속되었고 선거운동은 종점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루스벨트 후보 캠프에서는 남은 선거 기간 동안 미국 내륙의 소도시 기차역을 순회하는 마지막 지방 유세를 하며 기차역마다 멈춰서 루스벨트 후보가 직접 대중연설을 하고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사진과 주요 공약이 담긴 홍보 팸플릿을 나눠주는 전략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팸플릿 3백만 부가 화물 객차에 실려 있었다.
 
지방유세를 시작하기 직전, 선거캠프의 직원 한명이 심각한 문제를 발견했다. 홍보 팸플릿에 인쇄된 루스벨트 후보의 사진 하단에 "Moffett Studios, Chicago."라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저작권을 가진 모펫 스튜디오(Moffett Studios)에 사전 허락을 받지 않은 상황. 선거캠프는 혼란에 빠졌다.
 
선거캠프는 세 가지로 나누어 상황을 분석해보았다.

● 모른 척하고 배포했을 경우
변호사에게 재빨리 자문을 구해보니 저작권 위반의 사진을 그대로 내보낼 경우 저작권자는 사진 한 장당 1달러, 잠재적으로 총 3백만 달러(오늘날 약 6천만 달러, 한화로는 약 676억 원)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을 요구할 수 있었고,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를 당할 소지도 있어, 그야말로 대형 악재가 터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모른 척하고 배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
 
 홍보 팸플릿을 배포하지 않을 경우
남은 선거기간의 모든 것을 쏟아붓기로 한 마지막 지방 유세에서, 홍보 팸플릿을 배포하지 못한다면 루스벨트 후보의 당선을 장담할 수 없었다.
 
 홍보 팸플릿을 다시 인쇄할 가능성
그렇다고 3백만 부의 팸플릿을 모두 파기하고 다시 찍을 수도 없었다. 추가적으로 들어가는 비용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시간이 부족했다.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찾기 힘든 상황에서 당시 루스벨트 선거캠프는 모펫 스튜디오와 담판을 지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를 위해 상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보았더니,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모펫 스튜디오를 이끄는 모펫은 오랜 기간 사진작가로 활동했지만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고 현재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은퇴할 시점을 맞이하고 있어 경제적 이익에 집착하는 냉소적이고 불만스러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선거캠프를 이끌던 조지 퍼킨스(George Perkins)는 이 상황을 냉정하게 진단한 후 모펫 스튜디오에 직접 연락을 취하기로 했다.

BATNA를 찾기 힘든 이 상황을
당신이라면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당시 팸플릿에 실린, 모펫 스튜디오가 찍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사진 ⓒMoffett Studios

선대위원장인 조지 퍼킨스는 모펫 스튜디오에 아래와 같은 전보를 보냈다.

선거 홍보 팸플릿 수백만 부의 커버에 루스벨트 후보의 사진을 인쇄해 배포할 계획. 귀사의 스튜디오 사진이 실리게 되면 전국적으로 귀 스튜디오를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귀 스튜디오의 사진을 실어주는 대가로 얼마를 낼 용의가 있는지 확인 후, 즉시 답변바람.

모펫 스튜디오에서 곧 연락이 왔다.

이런 제안에 응해본 적이 없지만, 250달러를 낼 용의가 있음.

만약 조지 퍼킨스가 협상의 하수였다면 어떻게 대응했을까?
조지 퍼킨스가 모펫 스튜디오에 연락을 취해서 현 상황을 사실대로 드러내면서 적절한 선에서 합의를 이끌고자 했다면 합의는 원만하게 이루어졌을까? 모펫 스튜디오에서 루스벨트 후보 선거캠프가 BATNA를 찾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파악하는 순간, 어떤 제안이라도 상대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더욱 과감한 제안을 했을 것이다.
 
노련한 협상가인 조지 퍼킨스는 자신들이 대체할 수 있는 BATNA가 없음을 알리지 않고 오히려 여러 개의 매력적인 BATNA가 존재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둔 상황에서 협상을 시작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이번 거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가 상당하다는 것을 각인시킴으로써, 상대가 거래를 하고 싶게 만들었다. 결정적으로 "Respond Immediately.(즉시 답변 바람.)"라는 표현을 전보에 남김으로써 상대방이 우리 측 사정에 대한 추가 정보를 얻어낼 수 있는 여지를 차단시키고 복잡한 계산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협상 인사이트

1) 협상에 있어 정보의 중요성
모펫이 루스벨트 캠프 내부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갖고 있었다면 협상은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을 것이다.

2) 나의 프레임에 갇혀 있지 말고, 상대방의 인식에 초점을 맞춘다
루스벨트 캠프의 다른 선거 담당자들과 조지 퍼킨스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다른 사람들이 캠프 내부의 혼란과 위기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조지 퍼킨스는 이를 전혀 모르고 있는 모펫의 입장에 초점을 맞추어 협상을 진행했다는 점이다. 모펫 입장에서는 조지 퍼킨스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얻을 것이 없는 반면, 제안에 응하여 루스벨트가 대통령이 된다면 유명세, 명예, 경제적 이익 등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3) 어떠한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할 것인지 결정한다
협상을 할 때, 직접 만날 것인지, 전화를 할 것인지, 사람을 보낼 것인지, 내용증명을 보낼 것인지, 이메일을 쓸 것인지 등 통신수단이 가진 특징을 파악해서 자신의 상황에 가장 유리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활용해야 한다. 조지 퍼킨스는 직접 만나거나 전화를 한다면 상대방이 우리 측의 정보를 파악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전보를 활용해서 성공적인 딜을 이끌어냈다.

4) BATNA를 만들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라면 일단 이 사실을 숨긴다
BATNA가 없는 상황이라면 재빨리 대안을 만들어야 하지만, 이것도 불가능한 상황이면 이 사실을 숨겨서 협상의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

5) 한 발 더 나아가 가상의 BATNA를 개발하거나, 상대가 인식하는 나의 BATNA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여기에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조지 퍼킨스는 자신의 BATNA들을 암시하면서, 상대에게 이번 딜을 꼭 성사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자칫 법적인 문제의 소지가 생길 수 있는 전략이기 때문에 권유하지는 않지만, BATNA가 없을 때 기지를 발휘하여 가상의 BATNA를 만드는 것도 협상 고수들의 방법 중 하나이다.

6) "Respond immediately."
조지 퍼킨스는 전보 내용 말미에 "Respond immediately.(즉시 응답바람.)"라고 남겨서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압박함과 동시에, 모펫이 루스벨트 캠프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했다.

참고 자료
데이비드 랙스/제임스 세베니우스, 「당신은 협상을 아는가」, 웅진지식하우스 (2015)
디팩 맬호트라/맥스 베이저먼, 「협상 천재」, 웅진지식하우스 (2014)
Chad Ellis, 'Negotiation Theory and Practice'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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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류재언 / 변호사, 기업협상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