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9. 석유업자들이 부풀린 석유고갈론의 진실

2022. 10. 14. 21:57Finance, 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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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4 15:34:31


석유업자들이 부풀린 석유고갈론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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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영석(charleychae@global-aut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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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01 23:5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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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언급했듯이 자동차산업에서 이 시대의 화두는 중국 시장, 에너지와 전동화차, 자율주행차다.지금까지는 시장의 발전에 관해서 정리했다.이제부터는 에너지와 파워트레인을 비롯한 현재와 미래의 변화에 대해 살펴 본다. 우선은 에너지를 알아야 탈 것의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석유 고갈론을 주창하고 있다.지구촌의 에너지가 한계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석유고갈론,즉 피크 오일(Peak Oil)론이 등장했을 때 이후의 이론들은 상당 부분 석유생산 및 유통업자들과 그들에게 부역하는 청부과학자들에 의한 것이었다.이는 이산화탄소가 지구온난화를 야기한다는 이론과 함께 점차 설자리를 잃어가는 추세다.

 

일반적으로 세계 경제가 1% 성장하면 하루 평균 40~50만 배럴의 석유 수요가 발생한다고 본다. 5% 성장이라면 하루 평균 200만 배럴 이상의 수요가 증가한다는 계산이다. 경제 성장이 결코 좋은 현상만은 아니라는 역설도 가능한 수치이다. 산유국의 원유 생산능력은 증가하지 않고 있지만 중국과 인도 등 개발 도상국의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30년 후에는 석유가 고갈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후 한 참 동안 그 이야기가 세상을 지배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석유 고갈론’이었다. ‘석유 고갈론’은 특별한(?) 검증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 들여졌고 그것은 상황이 달라진 지금도 변함이 없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석유 고갈론’이 당연시되는 것 외에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내용은 찾을 수 없다. 외국에는 많은 자료가 있겠지만 국내에서는 그에 대한 논란이 깊이 있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금도 많은 전문가들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석유 고갈론’을 바탕으로 한 에너지 위기설을 주장하고 있다. 그것이 틀리다고 말할 근거도 많지 않고 역으로 이해는 하지만 확실한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할 수밖에 없다.

 

일본 마루베니 경제연구소장 시바타아키오는 그의 저서 자원전쟁(2010년 ㈜이레미디어 刊)을 통해 이런 궁금증을 조금은 풀어 주었다. 내용 중에 ‘피크 오일설’이 나온다. 피크 오일설에 대한 이야기가 국내에서 거론된 적도 있었지만 역시 피상적인 주장들에 그쳤었다. 그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피크 오일설은 미국 지질학자 M. K. 허버트(Marion King Hubbert)박사가 처음 주장한 것이다. 허버트 박사는 1970년대 상반기에 미국의 석유생산은 피크에 도달한다고 예측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에서는 텍사스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유정을 새로 찾은 터여서 그의 이론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1971년을 정점으로 이듬해부터 미국의 석유생산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초기 그의 예측은 적중한 것처럼 보였지만 북해 유전이 개발되면서 설득력을 잃었다. 그럼에도 논란은 계속 이어갔다. 영국 브리티시패트롤리엄(BP) 출신의 지질학자 콜린켐벨(Colin Campbell)은 1988년에 ‘원유 생산의 정점은 2010년 전후가 될 것이며 그 시기에 원유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그는 세계의 주요 유전에 대해 매장량과 연도별 생산량을 조사하여 그런 결론을 도출했다.

 

하지만 그의 이론에 대해 석유 메이저회사나 석유 전문가들은 다른 의견을 보였다. 2030년 정점설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시바타아키오는 크게 콜린켐벨 등 2010년에 피크에 달한다는 주장을 “이른 정점설”, 그리고 2030년으로 보는 주장을 ‘늦은 정점론’으로 분류한다.

 

이른 정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재래형 석유 매장량 추산에 근거하고 있다. 당시 이들은 지구의 원유 총 매장량을 2조 배럴로 계산했다. 그런데 인류가 석유를 이용하기 시작한 후 약 120년 동안 그 절반에 해당하는 1조 배럴이 사용되었다. 때문에 2010년을 기준으로 소비량을 기준으로 할 때 약 40년 분의 자원이 남아있다고 계산했다. 이들은 지구촌에 65개의 산유국이 있는데 그 중 60개국 이상이 유전 발견의 정점을 넘겼고 그 중 49개국이 석유 생산의 정점도 넘고 있다고 봤다.

 

 

이에 반해 늦은 정점론자들은 매장량이 3조 8,000억 배럴, 혹은 5조 배럴로 보았다. 기존 유전의 매장량이 늘고 있다는 점과 아직 개발하지 않은 타르 샌드나셰일오일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는 전제하의 이야기였다. 보는 시각과 계산의 방법에 따른 차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차이가 난다.

 

2008년에 발표된 BP통계에 따르면 2007년 말 석유의 채굴 가능 확인 매장량은 1조 2,379억 배럴이었다. 이를 2007년의 생산량으로 나눈 R/P율(Reserve Production Ratio), 즉 채굴 가능 연수는 41.6년이다. 재미있는 것은 2005년 말의 확인 매장량 1조 2,007억 배럴, R/P율 40.6년과 비교할 때 370억 배럴, 1년치 매장량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시바타아키오 박사는 생산 실적은 명백한 사실적 수치이지만 채굴 가능 매장량은 객관적 입장을 취하는 제 3자에 의해 산출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산유국측이 자진해서 신고한 내용을 집계한 결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세계 에너지 협의회 즉 WEC(World Energy Council)는 피크 오일이 2060년이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구가 100억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2100년이 되어도 현재 수준의 오일 생산이 계속된다고 예측하고 있다. 2015년 기준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은 8조 배럴로 계산되고 있다.

 

1980년대에 석유 잔존량 30년이라고 주장했던 설이 이제는 유명 무실해지고 누구의 말이 맞는지도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2010년 정점설을 주장했던 전문가의 말도 틀렸고 40년 분량이 남았다고 말한 것도 확실한 것이 아니다. 학자와 업계 전문가의 의견이 다르고 정치인들의 생각도 다르다. 언론은 그때 그때 심각성만 부각시켜 보도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세계적인 미래학자 엘빈토플러가 그의 저서 부의 미래에서 주장한 ‘중국의 경제 발전’을 감안해도 20달러가 적정한 선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석유 고갈론은 산유국과 석유 유통업자들이 만들어 낸 이론

석유 고갈론은 석유 가격의 부침을 반복적으로 만들어 냈다.2003년 미국 대통령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하기 직전 국제 원유가는 배럴당 18달러였다. 그러던 것이 2008년 150달러까지 치솟았었다. 당시 많은 전문가들은 200달러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가는 금융위기로 인해 다시 30달러대까지 곤두박질쳤고 예의 ‘전문가’들은 ‘20달러 시대 대비’를 설파하고 나섰다. 석유가격이 수요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 뒤에는 미국 정부를 등에 업은 석유 재벌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도 이제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엘빈토플러는 그의 저서 ‘부의 미래(2006년 ,청림출판 刊)’를 통해 배럴당 석유가의 상승에 대해 이렇게 해석했다. 2003년 이후 상승한 원유가의 절반 정도까지는 시장 논리에 의해 올라간 것이고 나머지는 투기꾼들이 올려 놓은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시장논리도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2003년 미국 대통령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하기 직전에는 배럴당 18달러였다. 갑작스럽게 석유가격이 급등한 것이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아니라 비축량 확보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한 미국에 의해 급등한 것이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석유가격의 농간으로 제국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자 하는 의도를 보여 오고 있다는 의견이 허구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하는 행위였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노려 치고 빠지는 투기꾼들에 대해서도 국제적으로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그 투기꾼의 배후가 누구인지에 대한 논란도 없다. 2008년 발간된 일본 정부의 ‘에너지 백서’는 “국제 원유 가격은 수급 요인에 따라 50~60달러가 결정되고, 나머지는 투기자금의 유입으로 오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석유 고갈론 못지 않게 투기꾼들의 역할론(?)이 크게 부각되어 있는 것이 에너지 시장의 현실이다. 그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가 없는 것 또한 불가사의한 내용이다.

 

이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각도에서 나와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미국의 ‘농간’에 의한 것이라는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원유의 생산량과 가격은 OPEC(Organization of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에 의해 좌우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OPEC는 이라크, 이란,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베네수엘라 등 5개국이 1960년에 석유 생산을 독점하는 석유 메이저회사에 대한 대항조직으로 탄생했다.

 

그것이 발전해 2009년 기준 OPEC 회원국은 초기 5개국에 더해 아프리카의 알제리•앙골라•나이지리아•리비아, 라틴아메리카의 에콰도르, 카타르•아랍에미리트 등 12개국이다. 회원국이 임명하는 이사회가 있으며, 본부는 오스트리아 빈에 있다.

 

 

문제는 석유 메이저회사다. 이는 석유의 채굴, 생산, 수송, 정제, 판매와 석유산업의 상부에서 하부까지 모든 것을 독점적으로 취급하는 거대 석유유통업체를 말한다. 미국 자본의 엑손(Exxon), 모빌(Mobil), 걸프(Gulf Oil Company), 텍사코(Texaco Inc.), 쉐브론(Chevron Corp.)과 영국 자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ritish Petroleum), 그리고 영국과 네델란드 자본 로열더치쉘 등 7개사, 소위 ‘세븐시스터즈(Seven Sisters)’를 말한다. 여기에 프랑스의 프랑스석유회사(TOTAL)을 추가자 에잇 시스터즈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원전쟁 시바타아키오, 이레미디어刊) 지금은 인수합병을 통해 4개사로 줄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 OPEC에 대항해 1974년에 IEA(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가 설립됐다는 점이다. 73년 1차 석유파동 이후, 석유 자원 감소와 에너지 비용 증대에 대한 우려 속에 OPEC등 산유국들의 석유무기화를 막는다는 취지에서 미국이 제창, 16개국이 설립했다. OECD 산하의 에너지집단 안보체제인 IEA는 파리의 경제협력개발기구 본부 내에 사무국을 두고 있다. 최고결정기관으로 이사회가 있고 1.석유의 긴급융통 2. 석유시장 3. 장기적인 협력 4. 산유국 기타 소비국과의 관계 등 4개 상설위원회 외에 사무국으로 구성됐다.

 

이렇게 되자 OPEC와 IEA에는 대립관계로 비춰지게 되었고 상호간의 세력 변화에 따라 유가는 변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석유 고갈론’을 설득력있고 강력하게 주장한다는 점이다. ‘석유 고갈론’은 당연히 석유가격을 올리고 그들의 뱃속을 채우는데 크게 기여해 오고 있다.

 

 

참고로 근래의 석유가격 변동을 살펴 보자. 1980년대에는 배럴당 평균 37.96달러였다. 그것이 1986년 7월에는 11달러 아래로 하락했다. 유가는 이후 10년 동안 20달러선에서 움직이다가 1998년에는 다시 떨어져 배럴당 평균 14.39달러를 기록했다. NYMEX(뉴욕상업거래소 [New York Mercantile Exchange] 단기선물은 1998년 12월 10일 배럴당 10.72달러로 사상 최저치를 보였다.

 

그런데 2003년 부시정권의 이라크 침공으로 인해 그들은 대립이 아니라 상호의존적 관계로 발전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미국의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주도한 IEA의 뜻대로 석유가격을 조종할 수 있게 되어 버렸다. 배럴당 18달러였던 원유 가격이 아무런 노력의 추가 없이 150달러나 됐으니 그 수익은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메이저 석유회사들은 1년 동안 100년치 수익을 올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 들였다. 돈벼락을 맞은 것이다. 미국의 농간으로 걸프전 당시 40달러였던 석유가격을 10달러 선으로 유지하자 소련은 경제력을 상실해 무너진 역사를 경험한 적이 있다.그런 러시아가 어부지리로 호사를 누렸던 것도 아니러니이다.

 

여담이지만 미국은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거대한 수익을 챙기는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주로 3,000~5,000cc 급 대형 모델로 라인업을 이루고 있던 미국 자동차회사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결국은 파산보호신청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부시정권은 석유회사들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존재이겠지만 자동차회사를 몰락시킨 ‘주범’이기도 한 것이다. 후에 역사가들 역시 처한 입장에 따라 그 때의 사건을 정리하겠지만.

 

원유가는 1970년대 말 걸프전 당시 40달러선까지 치솟은 적이 있었지만 2000년에는 10달러선을 유지했다. 그러던 것이 150달러에서 30달러까지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30달러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수요 감소로 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다시 70~80달러선까지 올라갔고 2010년 연말에 90달러 선을 넘어섰다. 이미 한 차례 200달러 시대를 부르댔던 골드만 삭스를 비롯한 투자은행 들은 다시 200달러 시대를 주창했다.하지만 2013년 유가는 다시 30달러대로 하락했다.그 배경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설명한다.

 

 

한국도 대세는 석유 고갈론이다. 다만 낙관적인 입장을 보이는 일부 의견도 있었다. 2007년 12월 17일 한국석유공사는 ‘유가, 100불 시대 오는가’라는 특별보고서를 통해, 석유고갈론 또는 피크오일론은넌센스라는 주장을 하였다. 40년 내 석유고갈론은 현재 확인 매장량 1조2천억 배럴을 연 300억 배럴인 현재의 생산량으로 나눈 수치인데, 비전통석유 7조 배럴 등이 고려되지 않은 것이며, 앞으로 100년 이상 석유고갈은 없다는 주장을 했다.

 

또 2010년 6월 6일 LG경제연구소는 '석유 시장의 잠재적인 안전판 '비전통 석유'라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비전통형(재래형)석유 9조 배럴이 존재하기 때문에, 원유 공급 부진을 다소 진정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생산된 것을 제외한 원유의 궁극 가채 매장량(기존 발견 매장량에 발견 가능성이 있는 미 발견 매장량을 합한 매장량)은 약 2.4조 배럴인 반면에, 비전통석유의 매장량은 약 8.5조~9조 배럴로 추정되는데, 이러한 비전통형 석유를 이용하면, 앞으로 증가하는 세계 석유 수요를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단순계산으로, 12조 배럴을 연 300억 배럴로 나누면 400년이라는 얘기이다. 한마디로 피크 오일설의 반대론적인 입장인 것이다.

 

이는 재래형 석유와 비재래형 석유의 매장량의 해석 차이라고는 하지만 도무지 설득력이 없다. 물리학적으로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 맞다면 석유는 시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언젠가는 고갈될 것이라는 정도만 인정하는 상황이다.

 

석유 고갈론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 유명한 미국의 로버트기요사키의 ‘부자들의 음모(2010년, 흐름출판 刊)’라는 책의 논리에서처럼 소위 ‘가진 자(돈이든 에너지든)’들의 농간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만 무엇이 진실이든 석유에 의존하는 한 석유가격의 농간을 비롯한 폭압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체 에너지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P.S.
‘석유 고갈론’에 대해서 그 ‘진실’이라는 것에 접근하는 것은 무리다. 주장은 할 수 있어도 그것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인정받는 것은 어렵다. 특히 저널리스트 입장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 것도 무리이다.

 

한 가지 석유 고갈론은 설득력있게 주창하면서 원자력 발전을 위한 우라늄과 최근 전기차 때문에 각광을 받고 있는 희소금속과 희토류의 매장량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기차가 금방이라도 석유를 대체할 것처럼 떠들어 대는 일부 ‘전문가’들도 그것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들은 어떤 형태라도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해 수익을 올리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