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5. 소비자, 자동차, 정치의 삼각형

2022. 10. 14. 21:03Finance, Biz

2017-02-13 20:17:03


콜라보오토타임즈의 시선

[칼럼]소비자, 자동차, 정치의 삼각형

2017.02.06. 10:2213,724 읽음

 자동차를 구입하는 소비자, 자동차를 만드는 제조자, 그리고 정치. 사실 세 분야는 매우 밀접하게 얽혀 있다. "자동차에 뚱딴지처럼 정치가 웬 말?"이냐는 강경파(?)도 있겠지만 한 꺼풀 껍데기를 벗기면 복잡하고, 미묘하게 얽힌 혈관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며 공생한다. 삼각 지지대로 버티는 셋 가운데 하나만 무너져도 관계는 허물어지고 만다. 미국은 이미 경험을 했거나 경험하는 중이며, 일본과 유럽은 대비 중이다. 그리고 한국은 불안하다. 덩치가 작을수록 산업민족주의 기반의 정치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현대기아차가 있다. 현대기아차 공장은 울산, 광주, 광명, 아산 등에 산재해 있다. 그리고 지난해 국내에서 완성차를 연간 322만대 생산했다. 322만대를 만들기 위해 10만명이 일을 한다. 그리고 완성차 생산을 위한 부품공급업체는 1차부터 마지막까지 5,000여개에 달하고, 관련 근로자만 20만명이 훌쩍 넘는다. 이들은 집단을 구성하고, 완성차 공장 주변에 위치한다. 이른바 '클러스터(Cluster)'다.
 
 그런데 한국에 공장이 있는 곳이 비단 현대기아만은 아니다. 한국지엠, 르노삼성차, 쌍용차도 있다. 이들이 연간 순수하게 지난해 한국 땅에서 만든 완성차는 441만대다(CKD제외). 공장은 부평, 창원, 평택, 군산, 전주, 부산 등에 산재해 있다. 한 마디로 전국구다. 

 ▲생산량 증가 vs 임금 보전
 지난해 국내 자동차 내수 시장은 181만대이고, 이 가운데 수입차는 20만대다. 다시 말해 연간 생산되는 441만대의 완성차 가운데 수입차 20만대를 제외한 321만대는 전량 해외로 수출된다. 주요 시장은 미국과 브라질, 유럽, 러시아, 인도 등이다. 그래서 한국차가 해외에서 선전할수록 한국 사람들이 일을 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세금도 내며 생계도 이어간다. 국가 입장에선 주요 세입원이자 국민들의 일자리가 보전되는 형국이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국내 완성차 생산을 더욱 늘리고 싶어 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런데 누가 대통령이 되든 기업이 한국 내에 완성차 공장을 추가로 지으려는 움직임은 전혀 없다. 생산에 소요되는 비용이 자꾸 높아져서다. 어차피 같은 제품을 만든다면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곳, 또는 같은 비용이라도 시장이 확보된 곳을 선택하는 게 기업의 본질이다. 그 결과 해외 생산이 자꾸 늘어난다. 물론 해외 생산은 현대기아차만 한다. 지난해 현대기아차의 해외 생산은 465만대, 2015년의 442만대보다 20만대 증가했다. 반면 수출용 완성차의 국내 생산은 2015년보다 무려 32만대 줄어든 202만대에 머물렀다. 

 물론 해외가 국내 생산을 앞지른 지는 이미 오래됐다. 문제는 해외 생산 증가율이 상당히 가파르다는 점이다. 국내 생산은 줄고 해외는 나날이 증가한다. 덕분에 국내 일자리도 늘지 않는다. 그리고 관련 세입도 제 자리 걸음이다.
 
 그러자 노조도 위기를 인식했다. 국내 일감을 늘리기 위해 파업 등을 벌이며 위세를 과시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임금 인상이 자리했다. 이를 간파한 기업은 노조가 일어날 때마다 임금 인상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그리고 생산은 해외에서 늘렸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자 정부가 나섰다. 정부는 국내 공장 확대를 위해 기업 달래기에 집중했다. 혜택도 주고, 규제도 풀어주겠다는 당근을 내놨다. 그럼에도 기업은 끄떡하지 않았다. 기업의 최대 목표는 수익 증대인데, 국내에서 생산하면 이익이 떨어지니 기피했다. 화가 난 정부는 트집을 잡아 기업 길들이기에 돌입했고, 이 때 기업은 경쟁력 약화를 내세워 맞받았다.  해외 시장에서 생존하려면 가격 경쟁력이 우선이고, 국내 생산 확대는 곧 경쟁력 약화라고 주장했다. 더불어 자꾸 위협하거나 못살게 굴면 유지하던 국내 생산마저 줄이겠다는 초강수를 던지기도 했다.   

 국내 생산 감축은 곧 일자리 축소를 의미한다. 경제 활성화의 최고 가치를 일자리 만들기로 내건 정부는 기업의 으름장(?)에 움찔했다. 그래서 또 다른 기업 달래기 차원에서 정치권을 동원해 시장 보호 제도를 은밀하게 만들어 줬다. 그나마 있는 것이라도 제대로 지켜보자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러자 한국서 장사하던 외국 기업들이 발끈했다. 차별이라고…. 최강 대국 미국은 물론 유럽 일부 국가가 항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장벽 만들면 똑 같이 만들어 보복하겠다고 선언했고, 실제 최근 미국 대통령이 된 도널드 트럼프는 오히려 앞장 서 미국 보호에 정치 생명을 걸었다. 321만대를 해외로 내보내는 한국으로선 불안한 징조다. 현지 세금 장벽 높이면 제품 가격이 올라 판매는 감소하고 공장 또한 근로 시간이 줄기 마련이다. 자칫 경제 위기까지 거론된다. 현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면 각 나라마다 어떻게든 자동차산업 보호에 앞장서는 형국이다. 

 이런 자동차산업 보호의 전례는 지난 2009년 이미 미국에서 벌어졌다. GM이 파산했을 때 미국 정부는 재정을 지원했다. 그리고 지원금 회수를 위해 고민하다 GM의 경쟁사를 건드렸다. 미국차를 보호해야 한다는 시민단체가 생겨났고, 이들은 토요타와 현대차 등을 경쟁자로 지목했다. 동시에 미국 정부는 GM 경쟁사의 리콜 확대 발표 방법을 동원했다. 덕분에 GM 판매는 늘었고, 정부에 빌렸던 돈은 모두 되갚았다. 미국 내 일자리를 지키고 자존심마저 회복했다. 일종의 미국적 애국심이 발현됐다. 

 미국 소비자들이 애국심을 발휘하면서 타격은 일본차와 한국차가 받았다. 그 중에서도 한국차가 조금 심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미국 내 일본차 공장 근로자가 한국차 공장보다 훨씬 많았다.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지키거나 늘려야 하는 미국 정부와 정치권은 미국차를 살리기 위해 상대적으로 만만한 상대를 골랐는데, 그게 한국차였다. 지난 2014년 미국 정부가 당시 미국에서 판매되던 한국차의 표시효율 오차가 기준을 넘었다고 발표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측정 규정을 따랐지만 미국 정부는 해석이 잘못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현대차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연간 1,500만대의 시장임을 잊지 않았다.
 

 미국보다 더 큰 시장인 중국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연간 2,700만대 중국의 노림수는 독자 개발 및 생산이었다. 어차피 합작사라도 중국 땅에 공장 지어 놓으면 결코 되가져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철수할 때는 자본이 가는 것일 뿐 공장은 그대로 남고, 해당 공장은 중국 합작사가 활용하면 된다고 봤다. 베이징현대차가 현대차를 생산하면 베이징차는 비슷한 차종을 만들어 '베이징차' 브랜드로 판매했다. 현대차가 항의하면 합작을 중단하면 그만이었다. 이 경우 해외 기업은 무조건 철수해야 했다. 해외 기업이 중국에 공장 지을 때 반드시 따라야 하는 '50:50' 지분율 법칙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중국 토종 브랜드도 애국심을 들고 나왔다. 중국이 만든 차를 타야 진정한 중국인이라고 외쳤다. 그리고 센카쿠제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이 격화되면 일본차를 공격했다. 민족 정서가 자동차에 투영됐고, 일본차 판매는 급락했다. 만약 중국과 한국의 정치적 갈등이 발생한다면 한국차도 일본차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래서 한국 정부와 정치권은 거대 시장인 중국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다지는데 집중했다.  

 ▲얽히고 얽히는 실타래
 다시 2014년으로 돌아가보자. 미국 정부의 표시효율 오차 지적에 따라 현대기아차는 신속히 보상했고, 이 점은 한국에서 차별로 인식됐다. 미국은 해주는데 한국은 보상이 없냐는 지적이 뒤따랐다. 제 아무리 효율 차이는 당연한 것으로 해명해도 믿지 않았다. 급기야 정부가 사후 검증 과정을 강화했지만 국민 분개는 식지 않았고, 달궈진 분노는 제조사에 대한 집단적 비판 및 비난으로 이어졌으며, 정부도 질책했다. 

 그러자 틈을 타서 정치권이 요동쳤다. 정치인들이 앞 다퉈 소비자 보호 명분을 앞세워 기업 규제 강화 법안을 쏟아냈다. 그들에게 당장 중요한 것은 산업이 아니라 화가 난 소비자였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때 표가 확보됐다. 

 정치는 생산에도 관여했다. 한편으론 국민 정서 반영을 명분 삼아 법을 만들면서 동시에 공장지대에선 완성차 생산을 늘리겠다는 약속을 남발(?)했다. 그걸 믿고 공장 근로자들은 목소리 큰 정치인에게 표를 던졌다. 그리고 해당 정치인은 제조사 경영진을 압박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국정감사를 빌미로 증인을 채택, 면박을 줬다. 외국인 경영진도 예외가 없었다. 

 그런데 이 광경을 본 국민들이 오히려 정치인이면 기업인을 마음대로 불러 창피함을 줘도 되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더불어 한국 정치권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미국과 유럽에서도 한국차 경영진을 불러 청문회를 하자고 했다. 181만대 작은 시장 내 한 명의 정치인이 글로벌 기업 경영진에게 목소리를 높이는 행위가 그들 눈에는 상식 밖으로 인식됐다.  

 그리고 한국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 2014년 쌍용차 미국 진출설이 흘러 나왔다. 해당 내용이 미국 언론에 보도된 이튿날 미국의 몇몇 주정부에서 신속하게 움직였다. 각종 혜택을 제시하며 쌍용차와 미팅을 요구했다. 공장이 들어서면 일자리가 늘어나고, 지방 정부 세수도 증가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러자 미국 진출용 완성차는 한국서 생산해야 한다는 국내 자치단체의 반박론도 나돌았다. 일부 국내 자치단체가 인센티브를 만들어 공장 부지를 제공하겠다고 공을 던졌다. 그리고 여기에는 정치권과 지방 정부 모두 입을 맞춘 듯했지만 속내는 달랐다. 정치인은 표를, 자치단체는 세수 확대를 원했다. 

 ▲현지 생산, 현지 판매
 기업이 해외 생산을 늘리는 이유는 오로지 비용 절감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차별 장막을 걷어내기 위한 방편이 되기도 했다. 시장이 있는 곳에 공장을 지어 현지 근로자를 채용했고, 이런 점은 지역 정치인의 공로로 여겨졌다. 또한 경제가 나빠져 해당 지역 내 보호무역 여론이 우세해져도 걱정이 없었다. 현지 생산으로 고용 확대에 기여하고 있어 칼날을 피할 수 있다. 

 그런데 시선을 반대로 보면 한국도 현지 생산, 현지 판매 법칙에서 예외는 아니다. 원래 한국에 있던 공장을 인수한 GM은 한국 정부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공장을 지켜야 했던 정부와 정치권은 지난 2002년 GM의 요구를 수용해 많은 돈을 지원해가며 인수를 허락했고, 이후 해외 수출이 증가했다. 지역 정치인은 고무됐고, 정부도 통치권자의 치적으로 홍보했다. 근로자들은 일자리도 지켰고, 덕분에 행복한 가정생활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점차 문제가 생겼다. 생산을 유지하려면 내수 판매가 늘어야 하는데, 180만대를 오르내리는 시장 규모는 고정벽처럼 견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생산 비용에 부담을 느낀 GM 본사가 완제품의 한국 수출을 늘리며 한국지엠도 영향을 받았다. 수출 지역을 전환해 생산대수 보전을 추진했지만 결과는 공장 가동 시간의 축소였고, 그만큼 일감도 떨어졌다. 

 물론 소비자들은 외쳤다. 그래도 한국지엠이 GM 글로벌에 기여한 부분이 적지 않으니 감안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연간 900만대를 판매하는 기업에게 18만대를 판매하는 한국 시장의 생산 시설은 과도했다. 2002년 인수 당시를 생각해야 한다고 외쳐봐야 당시 인수를 주도한 GM의 최고 경영진이나 한국 정부의 관료, 채권단 관계자, 심지어 대통령도 없다. 다시 말해 책임질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얘기다. 

 그러자 공장이 위치한 지역 정치권에서 미국 기업의 냉정함을 비판했다. 그리고 미국 가서 GM 경영진을 만나겠다고 들썩였다. 그럴 때마다 용감한(?) 모습에 반한 지역 소비자들의 표가 움직였다. 하지만 지역 정치인이 미국 디트로이트를 방문해 GM의 최고 경영자를 만난다고 상황이 변할 리는 없다. 기업은 오로지 이익을 만들어야 하고, 그 이익으로 근로자의 임금을 보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표만 얻으면 그만이지만 기업은 이익을, 근로자는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원할 뿐이다. 다시 말해 서로 원하는 바가 다르다.  

 이처럼 자동차산업은 정치 및 국익과 밀접하게 연관돼 지금도 애국 마케팅이 통하는 산업이다. 그만큼 노동이 집약된 특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결국 경쟁이 치열할수록 해당 지역 공장을 위한 보이지 않는 보호막은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180만대인 한국도 그러할진대 미국, 중국, 유럽이라고 다르지 않다. 푸조와 르노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프랑스 정부는 이들만은 위한 정책을 고안한 바 있다. 그러자 독일이 즉각 차별이라고 맞서면서도 독일 또한 국가 브랜드를 내세운 'Made by Germany'를 강조했다. 한 마디로 지금의 자동차산업은 국가 간 경쟁이고, 이 때 이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것은 민족정서다. 그리고 트럼프는 민족정서를 자극해 표를 얻어 대통령이 됐고, 미국의 거대 시장을 무기로 자동차산업 또한 보호로 돌릴 태세다.

 대책은 없을까? 현실적인 방안은 단 하나, 생산비용 낮추기다. 그러자면 정부, 노조, 기업 모두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머리를 맞댈 때마다 합의는 쉽지 않다. 밥그릇이 걸려 있어서다. 이를 두고 여론은 노사의 국내 갈등만을 부각시킨다. 정작 원인은 글로벌 시장의 급변에 있음에도 외면한다. 만약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의 현지 생산, 현지 판매가 완벽하게 정착된다면 한국은 180만대 생산 시설만 있으면 된다. 441만대에서 261만대의 생산이 줄어야 하며, 그에 따라 완성차 및 부품회사 근로자의 60% 일자리가 사라진다면 이는 곧 대재앙 수준이다. 또한 현실로 전개된다면 그 어떤 정치인도, 그 어떤 대통령도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이 마땅히 선택할 카드도 없다. 그저 국내 생산성을 높이는 수밖에...

 그런데 실제 미국 대통령이 된 도널드 트럼프가 이 점을 노리고 있다. 적어도 한국에서 사라지는 60%의 자동차 일자리 중 절반 가량은 미국으로 오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그래서 자동차산업이 민족주의 성향을 띤다는 점을 간과해선 곤란하다. 한국 내 완성차 노사가 갈등을 벌일 때 박수치는 곳은 미국과 중국 등 거대 자동차 시장의 근로자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근본 문제는 뒤로한 채 표면적으로 무조건 국내 공장 생산을 늘리겠다는 정치인은 다시 볼 필요가 있다. 그건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아서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